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오전 LA한인타운 내 한 초등학교에서 안경 전달식이 열렸다. 김재수 LA총영사가 타운내 한 안경점으로부터 제공받은 안경 2점을 2명의 학생에게 전달한 것.
김 총영사는 이 학교 모 교사로부터 얼마 전 “돈이 없어 안경을 사지 못해 칠판 글씨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 안경점에 부탁, 5명 아이들에게 안경을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안경 전달식장 분위기는 전해들은 얘기와는 좀 달랐다. 안경을 전달받은 아이들은 2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진짜 형편이 어려워 안경을 맞춘 아이는 한명 뿐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교사가 “안경점에서 추석을 맞아 무료로 안경을 해준다. 원하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라”는 말에 따라 손을 들었을 뿐이다. 그나마 3명은 검안 결과 아직 안경을 쓸 때가 아니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결국 이날 진짜 형편이 어려워 안경을 제공받은 학생은 1명이었다. 이날 안경을 제공받은 2명의 학생들은 학교측 지시에 따라 어머니를 동반하고 왔는데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가 언론에 얼굴이 보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부모 형편이 어려워 안경도 맞추지 못해 칠판 글씨를 읽지도 못하다가 총영사의 주선으로 무료 안경을 제공받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는 식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한 학부모는 아이의 얼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뒤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갔다.
다른 한명의 학부모가 주저하는 사이 총영사가 학생에게 안경을 끼워주는 장면이 사진에 찍혔고 다음날 언론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총영사가 안경을 선물했다는 식으로 보도됐다. 덕분에 이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 아이 안경도 못해주는 부모’라고 낙인이 찍혔고 아이로부터는 ‘엄마, 우리 집이 그렇게 어려워’라는 질문에 답변해야만 했다.
상처 받기는 총영사도 마찬가지였다. 총영사조차 자초지종을 자세히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총영사는 영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후원한 안경점 또한 순수하게 안경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기위해 후원을 결정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을 법 하다.
김 총영사는 최근들어 무료 클리닉이나 무료 법률 서비스 등 불우이웃을 돕는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동포사회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가려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좋은 취지로 기획된 안경 전달식 때문에 총영사와 학부모, 학생, 안경점까지 모두 상처를 받게 돼 안타깝기만 하다.
정대용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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