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과반수가 자국 대통령이 애초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의심하는 나라가 있다면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국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의 30%가 자국 대통령을 적법한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한 ‘바나나 공화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31일 발표된 조사기관 리서치 2000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77%에 불과하다. 미국민의 거의 4분의 1이 자국 대통령에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다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가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후보 시절부터 극소수의 음모론자들에 의해 제기돼 왔었다. 하지만 하와이 당국이 오바마의 출생기록을 공개했고 당시 오바마의 부모가 지역 신문을 통해 출생을 알린 사실도 확인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출생론자’(birther)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장은 근래 우파 라디오 토크쇼들을 통해 확산되면서 하나의 운동이 된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지역별로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난다.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에서는 90% 이상이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라는 의견이고 서부에서도 87%가 같은 믿음을 나타냈다. 반면 유독 남부에서만 오바마를 미국 태생으로 여기는 유권자들이 47%에 그쳤다. 사기꾼이 정권을 장악했을 수 있다는 음모론이 남부에서는 극소수의 망상이 아니라 과반수가 믿는 정론인 셈이다.
오바마 ‘케냐 출생설’은 특히 60세 이상 남부 백인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져 흑인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근거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유튜브 동영상들에서 보듯 미국을 외국인에게 빼앗겼다고 믿는 ‘출생론자’들은 분노에 가득 차 있다. 보수 웹사이트들은 정부에 맞설 때를 대비해 총을 구비할 것을 촉구하고 라디오 토크쇼들은 불법체류자들을 빌미로 나라를 빼앗기고 있다는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더 이상 이같은 기류를 소수의 극단주의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점점 과격해지고 있는 남부와 공화당에서 이런 기류가 주류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의회지도자들은 음모론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 대처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미국이 외국인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음모론에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때이다.
우정아 / 외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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