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뒤로 한 채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기간 50인승 버스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다. 대형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버스를 타고 검찰에 출두할 때 기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지난 2004년 가을 노 전 대통령이 LA를 방문했을 당시 기자는 행콕팍에 위치한 LA시장 관저 만찬 취재를 맡았었는데 제임스 한 당시 시장이 주최하는 만찬 취재를 위해 오후 4시부터 관저 주변에 대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만찬이 시작되기 전 밴을 타고 온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한국정부 주요 인사들이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들은 이날 행사의 조연에 불과했다.
행사 10분 전 SUV를 탄 시장이 도착하자 폭발물 탐지견들이 관저를 샅샅이 뒤졌다. 탐지견 임무 완수 뒤 무장경호원 수십명이 관저 주변을 에워싸고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최고 권력자’가 주인공인 행사에서 다른 인사들도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 당시 기자가 받은 느낌이었다. 노 전 대통령보다 더 좋은 학교와 배경을 가진 잘 나가는 정치인들이 ‘고졸도 하는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2.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지난해 11월 이명박 대통령의 LA 방문 때였다. 이번에는 입출국장인 LA국제공항 취재를 맡았는데 이 대통령이 밤 11시쯤 활주로에 내려 VIP 전용 게이트로 입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자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공항 활주로에서 이 대통령 도착 두 시간 전부터 대기해야 했다.
이태식 당시 주미대사와 김재수 LA총영사, 그리고 특별히 선택된 몇몇 한인 단체장들과 경호요원 수백명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고 타국 공항 활주로에 내려 바로 검은색 세단을 탈 수 있는 건 대통령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권력의 엄청난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번 뜰 때마다 수억원의 비용이 드는 대통령 특별기가 이착륙할 때면 한반도 상공에는 전후 30분 동안 다른 항공기의 비행이 금지된다고 하니 누가 대통령 자리를 마다하겠는가.
대형 버스를 타고 20시간 이상 여행하는 동안 약 1년 전 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나 최고 대접을 받았는데 버스를 타고 검찰에 출두할 때 노 전 대통령은 ‘참 서글펐겠다’하는 생각이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극진한’ 예우 차원에서 창문에 선탠을 했지만 서울을 오가는 왕복 10시간 동안 노 전 대통령이 느꼈을 법한 모멸감을 생각하면 고인에게 ‘죄송하다’는 마음뿐이다.
정대용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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