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한 주택에서 30대 가장과 비슷한 또래의 부인, 한 없이 귀엽기만 한 어린 남매 등 일가족 4명이 흉기로 온몸을 난자당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이 사건의 수사기록을 정리한 서류만 수천페이지에 달하며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만 150명이 넘는다. 처음 수사를 담당했던 미국인 형사는 누나를 보호하려고 시도한 듯한 자세로 숨져간 5살짜리 남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나이가 들어 은퇴한 뒤에도 범인을 쫓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세월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바로 1991년 11월20일 그라나다힐스에서 발생한 유희완(당시 36세)씨 일가족 흉기 피살사건이다.
사건발생 후 LAPD는 온갖 과학적 수사기법을 동원해 불철주야 수사를 벌였지만 18년이 지난 지금도 범인의 윤곽 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2001년 4월 LA한인타운 8가와 옥스포드 근처의 샤핑몰에서 발생한 스시맨 고승훈씨 피살사건도 미제로 남아있기는 마찬가지다. 고씨는 업소 바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캐나다에 있는 약혼녀와 휴대폰 통화를 하던 중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려 하루 아침에 저 세상 사람이 됐다.
2002년 4월 라미라다의 콘도에서 손발이 묶인 채 피살된 이은삼씨 사건, 같은 해 8월 역시 LA한인타운에서 발생한 업주 황두환씨 흉기피살 사건도 해결의 열쇠가 될 획기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수사가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이들 사건들이 수사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찰 내부에 이런저런 이유로 털어내지 못한 미제사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LAPD와 LA카운티 셰리프국 내에 미결상태로 남아있는 살인사건만 각각 수천건에 달할 정도여서 수사관들이 특정 사건 해결에만 매달릴 수 없는 어려운 현실이 이해가 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찰 내부에 복잡한 살인사건 수사를 전담하는 한인 수사관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원활한 수사진행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LAPD에서 10년 이상 몸담아온 한 한인 경관은 “대부분의 한인 경관들은 사무실에 앉아 하루 종일 서류와 씨름하는 수사과 발령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타인종 수사관들이 한인관련 사건을 주로 맡다보니 수사가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한인 커뮤니티에 날아들었다. 2003년 5월5일 미러클마일 지역의 고급아파트에서 발생한 한인모자·베이비시터 총격 피살사건의 용의자가 사건발생 6년 만인 지난 16일 검거됐다고 LAPD가 전격 발표한 것.
갑자기 용의자가 체포된 것도 놀랄만한 일인데 알고 보니 이 용의자는 피해자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고 약 3년 전 200만달러 규모의 투자사기 행각을 저질러 LA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미러클마일 사건의 해결은 시간이 갈수록 쌓여만 가는 한인관련 미제사건들을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인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 피해자 중 한사람인 베이비시터 민은식씨의 딸은 “LAPD 수사관들로부터 용의자 검거사실을 통보받았다”며 “어머니 사망 후 매년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용의자가 붙잡혀 법의 심판을 받게 돼 기쁘다. 배심원 재판이 시작되면 LA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 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지 모르는 미제사건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범인 검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미러클마일 사건 해결을 계기로 다른 미제 살인사건들도 수사에 탄력이 붙기를 기대한다. 무고한 사람을 해친 범죄자가 오늘도 웃으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미제사건들이 하루빨리 해결돼 피해자 가족들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았으면 한다.
구성훈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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