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볼(Small-ball)?’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메이저리그 슬러거 출신인 멕시코의 비니 캐스티야 감독은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한국팀은 ‘스몰볼’을 구사하며 어떻게 이기는 줄 아는 강한 팀”이라고 칭찬했다.
‘스몰볼’이란 야구에서 장타를 앞세운 호쾌한 정면공격보다는 안타나 포볼, 기습번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출루한 뒤 도루나 희생번트, 히트-앤-런 같은 적극적인 베이스러닝을 앞세워 찬스 때마다 점수를 짜내는 스타일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 아메리칸리그 팀들보다 화력이 다소 떨어지는 내셔널리그 팀들의 공격스타일을 아메리칸리그 스타일에 비교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캐스티야 감독이 2-8로 완패한 뒤 한국의 ‘스몰볼’ 야구에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구장이 커서 빅리거들도 홈런이 잘 안 터진다고 불평해온 펫코팍에서 지난 오프시즌 뉴욕 메츠와 3년 3,600만달러에 계약한 에이스 올리버 페레스를 상대로 홈런 3방을 포함, 장단 12안타를 퍼부으며 8점을 뽑아낸 한국타선을 단순히 ‘스몰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시아 국가들의 야구는 모두 ‘스몰볼’이라는 선입관이 널리 퍼져있어 당연히 한국도 ‘스몰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야구는 일본의 ‘스몰볼’과는 차이가 있다. 흔히 ‘현미경 야구’로 불리는 일본의 스타일이 스위스시계 톱니바퀴같이 모든 파트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전형적인 의미의 스몰볼이라면 한국은 ‘스몰볼’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스케일이 크고 스타일이 자유분방하다.
15일 벌어진 두 경기에서도 이런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일본이 철벽마운드와 그물망 수비, 그리고 12안타 중 11개가 단타였던 ‘소총공격’으로 쿠바를 침몰시켜 전형적인 ‘스몰볼’의 위력을 과시한 반면 이어 벌어진 경기에서 한국은 초반 3방의 큼지막한 대포를 쏘아 올려 멕시코의 기를 꺾은 뒤 후반에야 스몰볼의 진수를 드러내며 7회말 4점을 뽑아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물론 이날 홈런들이 의도적으로 장타를 노려 뽑아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투수를 그만큼 잘 파악해 직구를 집중 공략해 나온 것을 보면 분명히 스몰볼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호쾌함과 정교함을 필요에 따라 조합해낼 수 있는 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국야구의 저력이다.
한국의 전략적 능력은 이날 후반 이후 더욱 빛났다. 4-2로 앞선 6회 무사 1루 상황에서 이범호는 소위 ‘버스터’(번트모션으로 수비수를 끌어들인 뒤 강공)를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이 상황에선 번트밖에 없다고 생각한 멕시코 벤치의 생각을 역이용, 번트자세에서 갑자기 방망이를 빼 극단적인 전진수비를 펼치던 3루수 호헤 칸투를 원바운드로 넘어가는 좌전안타를 뽑아내며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후 다른 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이 보면 상대팀 벤치는 과연 전진수비를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7회 무사 1, 2루에서 고영민과 이진영의 더블스틸 역시 상대방의 혼을 빼놓은 한국식 토털야구의 정수였다. 이진영을 대주자로 투입한 뒤 상대투수의 피칭모션이 크고 수비진이 번트대비에 정신이 없어 도루에 대한 대비책이 없는 허점을 완벽하게 찌른 것이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ESPN 중계팀은 한국이 정말 창조적인 야구를 한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 한국야구는 일본의 세밀한 정교함에 비하면 투박하고 미국이나 남미팀에 비하면 파워가 떨어지지만 정작 이들을 상대로 경기할 때면 필요에 따라 세밀할 수도 있고 파워로 싸울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자칫 죽도 밥도 안 되는 스타일이 될 수도 있지만 잘하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야구다. 지금 한국팀의 플레이를 보면 한마디로 ‘토털 베이스볼’이라고 느껴진다. 한국야구는 굳이 표현하면 ‘Not-so-Small-Ball’이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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