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차편을 제공해 주느라, 요즘은 내가 궁금해서 같이 간다.
가는 곳은 뉴포트비치이다. 20분 정도면 바다에 도착을 하니 캘리포니아에 사는 것이 축복이다. 먼동이 틀 무렵이라 아직도 희미한 때에 아들 녀석은 길가에 세워둔 차들 사이에서 고무옷으로 갈아입는다. 제주도에서 해녀들이 입고 있던 고무옷보다는 훨씬 더 알록달록하다. 캘리포니아 해변의 아침은 알래스카 한류로 인해 언제나 싸늘하다. 옷을 다 입고 있는 나는 몸이 으슬으슬한데도 아들 녀석은 고무옷을 입으면서 재미있는 표정이다.
고무옷을 다 입은 아들 녀석은 친구와 함께 약간의 준비운동 후 아직도 차가운 모래를 밟고 바닷물을 향해 걸어간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는 과정이 하나 있다. 고무옷을 입은 채 소피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따뜻한 액체가 고무 옷과 피부 사이에 아주 따뜻한 막을 형성해서 상당히 좋단다. 아! 사람의 분비물이 이렇게 까지 유용할 줄이야. 그리고는 서프보드를 가지고 깊은 바다를 향해 헤엄쳐 들어간다.
나는 물가 백사장에서만 맴돈다. 캘리포니아 바다는 한참 더운 여름철 대낮에도 15분 이상을 버티기가 싸늘하다. 그러니 추운 새벽 겨울바다에 따라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거기다가 나는 서핑을 안 배웠다. 아니 못 배웠다는 말이 맞다. 아들 녀석이 7세 때 가족들이 하와이로 바캉스를 간 때가 있었다. 서핑을 가르쳐주는 클래스에 같이 들어가서 아들, 딸 그리고 나 이렇게 같이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반나절이 지나니까 서프보드를 올라타고 파도 위에 짧은 시간이나마 서있는데 나는 서프보드 위에 중심을 잡고 엎드려 있기도 힘들어 홀랑홀랑 뒤집어지고 물을 먹고 있었다. 나는 안간 힘을 다해 이틀 동안 발버둥을 친 끝에 포기했다. 서프보드 위에 엎드려 파도를 향해 저어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나 스노보드 한번 못 타고 자란 사람이 어떤 보드는 중심을 잡겠는가? 그 후부터 아들 녀석은 서핑 실력을 꾸준히 발전시켰고 나는 백사장을 걷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백사장을 거닐며 서핑하는 것을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서프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 바다에는 까만 물개 집단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핑하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는 은빛 파도는 연어들이 넘실대는 것 같다. 여명이 터오는 캘리포니아의 아침은 희망 차 보인다. 새벽이어야 파도가 일정하게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서프하기에 아주 적당하단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모든 파도가 다 서핑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제각기 자기에게 맞는 파도를 기다린다. 높이와 모양이 자기에게 맞는 파도가 오기 시작하면 재빨리 몸을 돌려 파도와 같은 방향으로 물을 헤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도가 자기 보드에 올 때쯤 재빨리 몸을 일으켜 밀려오는 파도의 앞쪽에 보드를 맞추면 보드가 파도의 힘에 의해 밀려나가기 시작한다. 몸과 발로 보드의 방향을 틀어가면서 파도 위에서 가급적이면 쓰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앞으로 나갈수록 고수이다.
위대한 자연은 끊임없이 파도를 보내준다. 사람이 파도를 일으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직 위대한 분이 보내주는 파도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파도 타는 모든 과정이 인생살이 같아 보인다. 기회가 와도 못타는 사람, 오는 파도를 마냥 즐겁게 탈 수 있는데도 자기가 파도를 일으키려고 발버둥 쳤던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어떤 때는 갑자기 바닷물이 아주 잔잔하여져서 파도가 전혀 안 일어날 때가 있다. 그때는 모두 보드 위에 걸터 올라앉아 마냥 기다린다. 시간이 길어지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잘 참고 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
파도가 일어나지 않을 때 끈질기게 기다리는 서프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요즘이 기다림을 배울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지 않아 기다리던 신나는 파도가 올 것이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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