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줄줄이 들려오는 기업들의 감원 뉴스가 경제위기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소위 잘 나가던 굴지의 기업들이 수천수만 명씩을 한꺼번에 잘라내고 있다. GM이 올해 1만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파산을 신청한 서킷시티는 직원 3만명이 직장을 잃게 됐다. 블루칩 기업인 알코아도 1만3,500명, 인텔은 6,000명,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도 5,000명을 줄인다고 한다.
작년 한 해 미국의 신규 실업자가 300만명이고 올 1월 들어 발표된 감원자수만도 32만명이라니 통계숫자만 봐도 으스스하다. 하지만 그냥 숫자로 느끼는 실업난의 오싹함도 실제로 직장을 잃은 실직자와 그 가족들 하나하나의 체감 고통과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실업대란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심상찮은 기류가 감지된다. 10일 연방상원을 통과한 경기부양법안에 포함된 구제금융 수혜 은행 외국인 취업비자 소지자 채용 제한 조항 같은 것이다.
미국민들의 혈세로 지원을 받는 은행들이 미국인 직원을 거리로 내몰면서 외국인들을 고용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외국인 전문직 취업비자(H-1B) 소지자 채용을 1년간 아예 금지하려다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외국인 채용 신청 전후 3개월간 미국인 직원 해고를 못하게 하는 쪽으로 슬쩍 비틀어 통과시켰다.
제안자 버니 샌더스 의원은 대형 은행들이 지난 6년간 외국인 직원 채용을 위해 H-1B 비자를 신청한 건수가 2만1,000건에 달했다는 보도 때문에 법안을 냈다고 했다. 그런데 작년 한 해라면 몰라도, 6년 전부터라면 미국 경제가 한창 흥청망청 잘 나가고 있을 때 아니었는가. 이점을 몰랐던 건지, 아니면 애써 외면한 건지가 궁금하다.
미 상공회의소와 이민변호사협회에 따르면 미국내 주요 은행 직원 중 취업비자 소지자는 많아야 0.7% 정도라고 한다. 이번 조치에서 누군가 손쉬운 타깃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은 냄새가 나는 이유다. 이번 법안이 정작 실업문제 해결에는 효과도 없을 상징적 조항을 내세운 ‘정치게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이민자들을 미국내 일자리를 앗아가는 주범쯤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극단적 반이민론자들의 특기이긴 하지만, 마치 취업 외국인과 이민자들이 작금의 실업난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덤터기 씌우기 양상은 곤란하다. 유례없는 경제 한파가 이민자들에게는 더욱 춥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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