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불과 1주일 남겨뒀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월요일 자청했던 퇴임 기자회견을 보면서 수년전 읽었던 칼럼의 한구절을 떠올렸다.
“권력은 짧고 인생은 길고 역사는 영원하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은 임기내내 비난의 칼날에 만신창이가 됐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역사는 단기간이 아니라 먼 훗날 평가받는 것”이라며 재임기간 미국을 강하고 더 이상의 비극적 테러가 없는 나라로 만든 결단력 있는 대통령이었음을 인지시키려 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다며 뭇매만 맞았다.
부시 대통령은 한달전 이라크로 날아가 현지에서 고별 기자회견을 가졌다가 이라크 기자가 연거푸 던진 신발을 맞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그다운 순발력을 발휘해 날아오는 신발을 재빨리 피하는 장면이 전세계 TV를 통해 반복 방영될 때 마다 미국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사람으로서 분노를 넘어 모욕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남들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미국의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지내며 권력의 주먹을 쉼없이 휘둘렀던 부시 대통령이 왜 역사를 운운 하며 막판 망신살을 자초했을까. ‘미국과 세계를 말아먹었다’는 부정적 시각만 남지 않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임기중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는 미국을 위해 노심초사했다며 기자들이 아량을 베풀어 재평가 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그는 운이 없었던 대통령이었다. 임기 원년인 2001년 전대미문의 9.11테러를 겪었고 뉴올리언스를 폐허로 만든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을 두 번째 임기 원년인 2005년에 당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겪어 보지 못한 두차례의 큰 재앙을 온몸으로 맞았던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으로도 기록된다.
적대국가에 대해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수행한다는 부시 독트린을 앞세워 핵무기가 없다는데도 이라크를 짓밟아 버렸다. 마치 9.11테러의 분풀이라도 해대듯이 말이다. 2004년에는 반미 분위기의 중동국가를 상대로는 “한판 뜨자”(let’s bring them on), “죽을래 살래“(dead or alive)등 과거 극진보 성향의 한국 노무현 전 대통령식 막가파 발언을 해가며 약소국가들과 멱살잡이해댔다. 주먹이면 다된다는듯이 거침없는 행동과 발언을 서슴없이 해댔다. 미국의 이미지를 무법천지에서 총차고 다니며 ‘맞짱뜨기’ 좋아하는 서부시대 ‘깡패’ 총잡이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메가톤급 재앙을 당했던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테러리스트를 잡아다가 감금하고 독재시절 한국서 유행했던 ‘물고문’, ‘칠성판 고문’을 동원해 정보를 캐냈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영장 없는 도청도 거리낌 없이 해댔다. 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힘센자의 논리로 법보다는 주먹을 앞세웠다.
그런 그가 짧은 권력을 떠나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후에 다가올 어둠의 허전한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있지도 않는 핵무기를 들먹이며 이라크를 뭉개놨으니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져간 4,000여명의 젊은 미군들의 원혼들과 죄없이 죽어간 이라크의 수만여 양민들도 퇴임 후의 그에게 부담이 될지 모른다. 수천억달러의 전비를 쏟아 붓고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이라크 전쟁도, 대공항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넘겨주고 떠나는 부담감도 훗날 역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권력의 축은 또다른 대통령으로 넘어가고 있다. 영원한 역사의 심판을 앞에 두고 말이다. “권력은 짧고 인생은 길고 역사는 영원하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김정섭
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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