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 월가의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로 리먼 브러더스 등 월가의 유수한 금융사들이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살아생전에 한번 들을까 말까한 엄청난 경제 뉴스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무감각해진 상태가 됐다. 과연 여기가 미국인지 제3세계인지 모를 정도로 미국 경제는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주택의 에퀴티가 증발한 것은 물론 401(k)의 포트폴리오가 크게 줄고 투자한 주식과 부동산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실업자도 크게 늘었다.
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살던 주택이 차압되고 투자한 주식은 폭락하고 삶의 터전인 비즈니스는 매출이 격감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7년 12월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미국의 경기침체가 언제 회복이 될 수 있을지 경제전문가들의 진단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우리가 잃은 것만 있을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주택가격의 폭락은 퍼스트 홈바이어에게는 싼 가격에 주택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현금이 있는 투자가는 크게 하락한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호경기 덕택에 생긴 에퀴티로 흥청망청 돈을 써왔던 소비자들도 이제는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신용경색 현상으로 1년 전의 1달러와 지금의 1달러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만으로 살림을 했던 한 한인 가정주부는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자 자신의 전공인 성악을 살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레슨을 시작, 한푼 두푼 땀 흘려 버는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그동안 벌어다 주는 돈만 쓸 줄 알았지 자신이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보기는 지금이 처음인데 자연스럽게 남편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고 가족 간의 결속도 더욱 강화됐다고 한다. 한인타운의 한 여행사는 경기침체로 운영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자진해서 간부들은 봉급을 일시적으로 반납하고 직원들도 잠정적으로 감봉키로 했다고 한다. 사장은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스스로 고통분담을 결정한 직원들로 인해 용기백배해 큰 힘을 얻었고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직원들에게 더 큰 보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교회의 신도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예측 불가한 것이 경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불경기 탓에 헌금은 예년만 못하지만 말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탄절 단골영화 ‘멋진 인생’(It’s Wonderful Life)을 보며 대공황 당시 한 미국인 가장이 겪었던 고충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했던 중년의 사업가 조지 베일리는 파산위기에 처하자 ‘나 같은 것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자조하면서 강물에 뛰어내려 자살하려한다. 이때 수호천사가 먼저 뛰어내려 죽는 시늉을 하자 베일리가 뛰어내려 수호천사를 구한다.
죽으려고 뛰어내리려 했던 베일리가 오히려 수호천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말까지 했을 까 이해가 간다.
경기침체로 우리는 1930년대의 미국인들처럼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는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고 있다.
박흥률
부국장 겸 경제 1부장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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