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가 되기 전 웹매거진 ‘슬레이트’(slate.com)에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중 1970년대 워싱턴 DC에서 젊은 부모들이 서로 자녀들을 돌봐주기 위해 세운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조합은 다른 회원의 아기를 돌봐주는 회원에 쿠폰을 발행,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회원들은 남의 자녀를 돌봐준 만큼 자기 자녀를 맡기고 외출할 수 있었는데 곧 문제가 생겼다.
회원들이 쿠폰을 한꺼번에 많이 써야할 시기에 대비해 쿠폰을 저축하기 시작한 것. 아기를 봐주겠다는 부모가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부모보다 많아지자 쿠폰이 유통되지 않았다. 조합이 불경기에 빠진 셈이었다. 그러자 조합은 경제 원칙을 응용해 쿠폰을 더 발행했다. 쿠폰이 흔해지면서 다시 유통이 시작되었고 베이비시팅을 해줄 ‘고용’ 기회가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경기 침체는 반드시 누구의 잘못 때문에 모두가 겪어야 하는 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조합원들이 나쁜 베이비시터였기 때문에 침체에 빠진 것이 아니라 쿠폰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던 것처럼 경기 순환도 중앙은행과 정부의 조치로 어느 정도 조절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 그는 매우 효과적인 경기부양이 없을 경우 세계 불황이 2011년까지 계속되고 미국 실업률이 두자리수에 이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이번 경제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누군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닐까.
거액 보너스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고이자 모기지를 준 서브프라임 렌더들, 정부의 규제 없이 무모한 모험을 한 ‘그림자’ 금융기관들, 빈부격차 심화로 소비자들이 빚으로 수요를 채우게 이끈 공급위주의 경제정책 등 책임을 물을 곳이 끝없다.
월가 스캔들을 보면서 꼭 7년 전 파산한 엔론을 상기하게 된다.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된 엔론의 몰락은 단기성과에 몰입한 근시적 안목, 자산이 필요 없다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발한’ 파생상품,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기를 조작한 정부 규제완화의 악용 등으로 두드러졌다.
미 사상 최악의 기업 스캔들이었던 엔론은 부시 행정부가 부추긴 이라크 전쟁 무드에 밀려 곧 미국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다만 크루그먼은 당시 엔론 스캔들이 미국 사회에 9.11보다 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예견,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비웃음을 산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경제 9.11’이라고 불리는 이번 금융위기가 미국 사회에 어떤 전환점이 될 지 숨 조이며 지켜보는 형편이다.
우정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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