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갈대 등본’ 전문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석양 빛 거느릴 시간이면 허공의 새떼는 부러진 펜촉 같기도 하겠다. 소금처럼 일어서는 설산(雪山)이라 했으니 갈대는 하얗게 빛나면서 우우 거렸겠다. 바람을 받았으면 갈대의 몸은 당연히 휘어졌겠지. 그것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이 갈대라고 여겼을 것이다. 무언가에 결의를 걸기엔 늦지 않았겠냐고. 그러나 그는 家長인 것이다. 아버지의 한 생애가 갈대였던 것처럼 그 역시 바람을 모두 통과해야 그 무거운 직책으로부터 헤어날 것을 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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