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1927~) ‘기차’ 전문

기차가 멈추고
사람 하나 내 앞에 내렸다

그 사람은
나의 식탁에서
내 마음 몇 접시를 먹곤
그의 종착역으로
다시 떠났다

그 후에도
기차는 간혹 내 앞에 멈췄으나
누구도 내리질 않았다

세월이 내 눈썹에
설풋이 하얀 안개를 덮는 날
내가 기차를 타고
그의 세상으로 갔더니
그 사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누구에게나 기차에서 내렸던 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남편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고. 부모나 자식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나의 식탁에서/ 내 마음 몇 접시를 먹곤” 서둘러 종착역으로 가버리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한번 간 사람은 아무리 기차를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그를 만나려면 내가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죽음이라는 기차를 타고 저 세상으로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누구나 타야할 기차지만 읽는 마음이 많이 쓸쓸해진다.

한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