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진 ‘북’ 전문
아버지는 북이다 한 번도 북을 두드려 보지 못하고 북을 향해 누웠다 나는 생전의 아버지 앞에서 한 번도 북을 위로 놓고 지도를 펴보지 않았다 북을 발밑에 깔고 남으로 서울을 지나 괴산, 충주를 손톱으로 눌렀다 피묻히고 얼룩진 자리가 고향이 아닌가요, 나는 우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북을 따듯한 남쪽으로 그리워했다 형편없는 마당이었지만 목련은 피었다 목련은 남을 등지고 북으로만 꽃을 피웠다 아직 맺히지도 못한 나는 아버지 등을 돌려 보세요, 이쪽이 따뜻한걸요, 남풍이 불어도 아버지는 북을 향해 단추를 풀었다 북창이 많은 집일수록 아버지는 값을 높게 쳐주었다 내가 북리(北里)에 편지를 써대기 시작할 무렵 북관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것 보렴, 두드릴 수 있다니깐 그러나 새들은 얼음덩어리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누가 두드려 주지 않는 북처럼 윗목에 놓여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북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북을 향해 아들과 함께 절을 하였다 아버지 북 받으세요
북쪽이 고향인 아버지의 심정을 절절하게도 꿰고 있다. 아버지 듣는 데서는 북쪽 얘기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자식들. 목련꽃도 북쪽을 향해서만 피어야 하고, 북쪽으로 난 창이 많을수록 높은 값을 쳐줬다는 것만 봐도 아버지의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자식들조차도 복 대신에 “북 받으세요” 하겠는가. 머잖아 통일이 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말도 염치가 없어서 더는 못하겠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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