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은 역시 달랐다.
기자회견에서 만난 그는 연예인이 아니라 천생 ‘가수’였다.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조용필’이라며 40년 음악인생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그저 연습할 뿐”이라며 “무대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분명 달랐다.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막이 오르자 그의 음악은 귀가 아닌 심장을 울렸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가수 조용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입에 대지 않고 ‘생 목소리’로 ‘창밖의 여인’과 ‘정’을 열창하는 모습은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화려한 조명과 탁월한 음향, 특별히 준비된 영상들은 다른 가수의 공연과 확실히 달랐다.
‘가수 조용필’은 첨단 장비와 기술, 훌륭한 공연장을 만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LA에서도 대규모 라이브 콘서트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러나 공연 후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최고라는 사람, 최악이라는 사람. 역시 조용필이라는 사람, 과거의 조용필이 아니었다는 사람. 소리가 가슴에 와닿아 감격했다는 사람, 너무 시끄러워 귀가 아팠다는 사람. 기대 이상과 기대 이하라는 두 가지 시선이 세대차와 함께 묘하게 교차됐다.
어디에서 시작된 차이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국과 LA의 차이, 두 곳의 문화차이, 이민 연도의 차이, 세대차이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은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공연문화도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보는’ 공연에서 함께 ‘즐기는’ 공연이 됐다. 관객들도 공연의 주인공이 되어 가수와 호흡하며 같이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가수들도 일방적으로 히트곡들을 늘어놓는 것 보다는 주제에 맞는 선곡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수 조용필’ 역시 데뷔 40주년을 맞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자신의 인생과 음악을 대표하는 주제로 정했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강한 표범에 빗대어 자신의 음악인생을 노래했다.
그러나 LA팬들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겨울의 찻집’ ‘창밖의 여인’ ‘허공’ 등 최고의 히트곡들이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기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필 공연은 우리에게 ‘관객과 무대 사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LA에서 한국의 좋은 공연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를 통해 우리도 ‘함께 즐기는 공연’을 더 많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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