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리 로먼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외판원이었고,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30여년을 세일즈맨으로 죽어라 일하는 동안 어느새 나이가 들었고, 그나마 조금 편한 부서에서 일해 보기 위해 상사에게 말을 꺼냈다가 “아예 푹 쉬라”며 해고까지 당했다.
열심히 살아왔건만 남은 것은 없고, 자신과 감정의 골만 깊어진 두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지난 시간과 끝없는 독백을 나누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했다. 그나마 큰 아들과 서로 감정의 벽을 허물자마자 그는 아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려고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실화가 아니다, 극작가 아서 밀러(Arther Miller)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을 대충 정리해 본 줄거리다.
‘산업화 속 인간소외’ ‘물질 만능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등 여러 사치스럽고 고리타분한 문학적 평가를 떠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 책을 찾아 읽고, 윌리 로먼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구성이 탄탄해서, 아니면 그 내용이 흥미진진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의 삶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겪었던 번뇌와 갈등이 우리 삶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 이다.
사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이민생활을 살펴보면 얼마나 단조롭고 바쁜가. 일하다 보면 어느새 주말. 일주일치 장보고, 자동차 엔진오일 교체, 집안 청소하다 보면 주말이 훌쩍 지나 버리고,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된다. 반복의 연속이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살았건만 여전히 매달 꼬박꼬박 들어가는 페이먼트는 변함이 없고,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터져 목돈이 들어가게 되면 다음 달 생활비가 빠듯해 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더욱이 요즘은 경기침체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개스비, 장바구니 물가에 숨이 막힐 정도다.
한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에 온 국토가 들썩이며 소란스럽지만,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일에 관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볼 만한 여유가 없다.
비록 아서 밀러의 작품이 발표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어도 그 당시의 메커니즘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싫든 좋든 우리는 로만이 살았던 그 환경, 굴레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특별한 의미를 떠나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를 뒤돌아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 보는 달이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족, 가정은 무엇인가. 행복의 근원이다.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곳이요. 위로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굳이 로먼을 떠올린 것은 그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동조를 얻고자 함이 아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다. 모자라고 아픈 곳이 있어 도 실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어서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할리웃 보울에서 음악대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해마다 2만 명 가까운 한인들이 가족 단위로 음식과 5달러짜리 포도주를 준비해 행사장을 찾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 하늘 높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화려한 공연을 가슴에 담다 보면 어느새 힘들었던 지난 순간들이 절로 잊혀지고, 환히 웃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로먼이 아닌 요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새로운 로먼의 부활을 꿈꾸며 말이다.
황성락 특집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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