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 또는 지식 추구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의 사회적 승인절차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얻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각고의 인내와 열정 그리고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는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축적의 결과물이기 이전에 전문인의 윤리의식까지 합쳐진 통합적 산물이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어느 사회에서나 권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앞서 말한 요건의 권위자 부재 때는 그 사회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면 사회과학, 인문과학, 공학과 문화 예술 등을 다시 전문분야 별로 나눈다면, 그리고 각 권위자를 손꼽을 수 있다면 그 나라와 사회는 그 권위자의 수만큼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권위자들의 집단이 권위주의를 행사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권위주의는 자율에 의한 존중을 원칙으로 하지 않고, 억압에 의한 통제와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가 정치와 합류된다면 독재가 되기 쉬울 것이고, 비정치적인 분야와 합쳐진다면 경직된 사회가 될 것이다.
미국은 비교적 권위의식이 적은 곳이다. 사회적 문제나 사회적 증상을 권위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마리를 잡고 시간을 갖고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얼마 전 아카데미상 시상식 직전에 타결이 난 할리웃 극작가들의 스트라이크 또한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필자 자신이 경험하면서도 감탄해 마지않는 미국학계의 전통도 좋은 예가 된다고 본다.
어떤 이론의 대가로 인식되고 있는 학자가 정말 이름 없는 한 대학원생에게 본인이 발표 준비중인 책의 한 챕터를 보내며, 읽고 비평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고 하고, 더불어 앞서 질문한 것에 친절한 답을 해오는 것을 보면서 ‘아, 그래서 미국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식상한 감탄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서나 비평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귀를 기울이고,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의 지식과 이해와 지혜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된 권위자라 할 수 있겠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러한 바로 된 권위자상이 확립되어, 현재의 제도의 미비한 점을 보완 구축하여 자기 표절을 비롯한 부정직한 행위가 더 이상 관행으로 통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학계의 권위는 보편적 타당성을 넘어 순수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기본적 의무로 심각한 자성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들이 움직여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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