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났다. 19일 퇴임사를 통해 쿠바 국가평의회의장 자리를 공식 사임한 것이다. 32세부터 50년 가까이 집권해 왔으니 카스트로는 현존하는 세계 국가지도자 가운데 최장기 집권기록을 세운 셈이다.
카스트로를, 쿠바를 이야기하면 자연히 오버랩 되는 인물이 있다. 어네스토 체 게바라다.
카스트로가 본격적인 혁명의 길로 뛰어든 때는 당시 쿠바의 군사독재자 바티스타를 전복시키기 위해 한 병영을 습격한 1953년부터다. 이 기도는 실패로 끝나고 카스트로는 체포된다. 이후 특사로 2년 만에 풀려난 그는 멕시코로 망명한다. 거기서 만난 인물이 체 게바라다.
둘 다 30도 안된 나이였다. 한 사람은 쿠바출신의 변호사다, 다른 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학도였다. 이 둘은 그러나 혁명동지로서 의기가 투합해 함께 투쟁에 나선다.
쿠바혁명이 바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합작품이다. 이들은 함께 3년간이나 반정부 게릴라전을 이끌어왔다. 1959년 체 게바라가 이끈 게릴라 군이 마침내 아바나에 입성,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혁명이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체 게바라는 2인자로서 중앙은행총재, 상공부장관 등을 지냈으나 곧 사임하고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 혁명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다가 1967년 40도 채 안된 나이에 볼리비아의 산자락에서 삶을 마친다.
카스트로는 이후 줄곧 권좌를 지켜왔다. 국가평의회 의장을 사임하기까지 49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것이다.
카스트로는 한 때 좌파 지식인들의 우상이었다. 공산주의자인데 스탈린 등과 전혀 모습을 달리해서다. 장 폴 사르트르, 가르시아 마르께즈 등이 대표적인 카스트로의 팬. 이들은 그를 가장 이상적인 혁명가로 보았던 것이다.
카스트로는 그러나 변하기 시작했다. 혁명가가 아닌 독재자로 변신한 것이다. 앙골라의 전쟁 영웅이던 아르날도 오초아가 귀국하자 부패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의 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론탄압이 이루어지고 지식인 감금, 정적 숙청 등의 사태가 이루어지면서 쿠바는 카스트로제국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권좌를 동생 라울에게 물려주었다.
체 게바라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말할 것도 없다. 40년이 지난 오늘 그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의 ‘그때 그곳’도 성지가 되다시피 했을 정도다.
반세기 가까이 권좌를 지키면서 쿠바를 세계 최악의 빈민국가로 전락시킨 카스트로와 젊은 나이에 혁명의 최전선에서 싸우다 산화해 이제는 고고히 빛나는 별이 된 체 게바라. 훗날의 역사는 이 둘 중에 누구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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