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이면 4년 가까운 LA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한 대기업 주재원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그와는 취재원과 기자로 3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이라 정도 많이 들었다.
그가 소속 회사의 언론 담당 역할을 겸했기 때문에 그 회사에 관한 비판적 기사라도 나가면 상사로부터 질책을 듣곤 해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은 터였다. 이날 식사를 하면서 그의 모르던 모습을 발견했다. “이 사람 참 괜찮은 아버지구나”하는 발견이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8학년과 4학년인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이번에 귀국하면서 아이들을 모두 한국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보통 대기업 주재원으로 미국에 온 40대 초반의 아버지들은 귀국 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아내와 자녀들을 이곳에 남겨두기 마련인데 그는 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그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귀국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자 큰 아들이 아니나 다를까 “아빠, 나 여기 남아 있으면 안 돼”라고 물어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아들에게 “네가 정말 여기 남고 싶다면 그렇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때 네가 유학을 오겠다면 전적으로 지원해주겠다. 그리고 아빠 월급으로는 기러기 아빠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이런 아버지의 설득에 아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내도 “한국 생활이 더 편하다. 그리고 가족이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다”고 그를 거들자 아이들은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았다.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정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생활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은 편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높다는 통계도 나와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지금 영어 열풍이 거세다. 아니 열풍 수준을 넘어 광풍 수준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형편이 되면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여기에 반해 가족 모두 데리고 함께 귀국하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깟(?) 영어보다 중요한 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정대용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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