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관리는 UPS나 페덱스(FedEx)에 맡기는 게 어떤가’
웬 궤변이냐 하시겠지만, 이는 올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나선 한 유력 주자가 한 말이다. 지난해 9월 열렸던 공화당의 예비후보 토론회에서다. UPS나 페덱스같은 택배회사로 물건을 부치면 추적 관리가 잘 되는데 정부의 (불법) 이민자 관리는 도통 엉망인 것 같으니, 아예 이민 문제는 이들 회사에 아웃소싱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비꼰 것이다.
언급의 주인공은 후에 아이오와 예비선거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마이크 허커비다. 허커비의 말대로라면 공상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처럼 이민자들의 이마마다 바코드가 떡 붙어야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당시만 해도 허커비는 미트 롬니나 론 폴 같은 다른 강성 공화당 후보들만큼 반이민 성향이 강하지는 않았다. 위의 언급은 이민 시스템의 붕괴와 정부의 무능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만 했다.
이번 미국 대선만큼 이민 정책, 특히 불법이민자 문제가 예비선거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적도 없는 것 같다. 특히 공화당 강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렇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라는 응답이 1, 2위를 다툰다.
이렇다보니 이민 이슈는 대선 후보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밀어붙인 ‘포괄적 이민개혁’이 반이민 기류에 떠밀려 연방의회에서 좌초되면서 특히 공화당 후보들은 이민 문제에 관해서는 말을 조심하거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민 문제는 택배회사에나 맡기라’고 일갈하던 허커비는 12월이 되자 미국내 불체자들을 모두 120일내에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민 정책을 내놓으며 입장이 표변했다.
허커비 뿐 아니다.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직에 있던 지난 1994년 반이민 정서를 비판하며 “서류미비자들은 대다수가 이 도시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이들이 도망자 취급당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연말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이민국의 단속의 손길이 모든 불법 이민자들에게 미치지 못했다며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모두 넘겼을 것이다. 그러면 시 인구가 줄어들었을 테고 문제도 덜 발생했을 것”이라고 180도 말을 바꿨다.
그러나 후보들이 아무리 강경 보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 쳐도 작금의 상황은 이민 문제가 대선주자로서 이들의 사활을 결정할 최우선 이슈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민 정책에 관한 한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이단아’인 존 매케인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내 불체자 합법화를 허용하는 이민 개혁안을 테드 케네디 민주당 의원과 공동 발의했던 그는 강경보수 진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극단적 반이민주의자들의 활동이 만만찮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위로 올라섰고 플로리다 여론조사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의회에서 이민개혁이 단행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온 당력을 집중해야 할 대선을 앞두고 이민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손대려 할 간 큰 정치인들은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앞장섰던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지난해 실패한 것은 중력이 대선 쪽으로 쏠려 있던 시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민심이 다음 대통령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민개혁이 어떻게 추진될 지를 가늠케 해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아직 ‘수퍼 화요일’도 지나지 않은 이른 단계지만, 공화당에서도 친이민 성향 후보가 선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 벌써부터 ‘대선 이후’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만든다.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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