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라하브라에서 UCLA를 졸업한 한인청년 마이클 조(25)씨가 범죄용의자 출몰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은 연초부터 많은 한인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총기가 아닌 쇠막대기를 손에 든 채 근거리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관들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겨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빼앗았다.
지난 4일 오후 1시30분께. 조씨 피살사건에 대해 해당 경찰국이 입장을 밝히는 OC 한인회 기자회견장은 한인사회 주최로 열린 경찰 성토장이었다. 한인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라하브라 경찰국 데니스 키스 국장은 격앙된 50여 한인들에게 둘러싸여 1시간 동안 쏟아지는 가시 돋친 질문들을 처리하느라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조씨에게 총을 쏘게 된 경위를 따져 물으려던 기자회견의 본 취지와는 달리 다소 흥분한 일부 참석자들의 얼토당토않은 질문들로 인해 회견장 분위기가 썰렁해 지기도 했다. ‘총에 맞은 젊은이가 당신 아들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유가족에게 조화는 보냈느냐. 보내지 않았다면 정말 유감이다’라는 감정 섞인 질문과 발언이 이어지는가 하면 ‘라하브라 경찰국에 소속된 한인경관은 몇 명이냐’ ‘한인경관을 더 많이 채용할 계획은 있느냐’ 는 등 사건 본질과는 동떨어진 질문들도 나와 기자를 비롯한 일부 참석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조씨의 부모 등 가족이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번 사건은 한인 커뮤니티 전체의 비극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으며,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키우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공권력의 무차별 총격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미국 같은 선진국 치고 공권력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은 ‘총’의 나라다. 유럽 대륙에서 배타고 건너온 백인 이민자와 후손들이 본토 곳곳을 누비며 총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가 바로 미국 아니던가. 미주 한인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버지니아텍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 네브래스카주 샤핑몰 총격사건 등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케이스는 물론 경찰에 쫓기던 범죄 용의자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관련 강력사건 때문에 많은 한인들은 가시방석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조씨 사건과 관련, 유가족과 한인사회 지도자, 일반인 등 코리안들이 똘똘 뭉쳐 정부 당국에 조씨가 왜 그날 그 장소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져야 했는지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커뮤니티 권익옹호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조씨 사건 조사에 착수한 오렌지카운티 검찰의 한인 수잔 강 대변인도 “지금까지 검찰은 모든 경찰관 총격사건을 법에 따라 처리해왔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검찰을 믿어 달라”고 공정한 조사를 약속했다.
사건 발생 이후 OC 한인회에서 열린 라하브라 경찰국장 기자회견에 이어 라하브라 시의회에서도 유가족과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시장과 시의원들 앞에서 조씨 피살사건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필요할 경우 경찰국 앞에서 촛불시위도 가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피해 당사자가 한인이기 때문에 한인사회가 사건에 대해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조씨의 죽음에 대해 침묵해서도 안 되지만 감정에 휩쓸려 이성을 잃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인사회의 단합되고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다.
구성훈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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