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나성구’ 포근하지만 자조섞인 한인타운의 별칭이다.
한국어 간판, 영어 한마디 못해도 사는데 지장 없는 곳. 된장찌개, 김치찌개, 저녁이면 소주한잔, 마늘을 아무리 먹어도 고개 돌릴 사람 없는 곳.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조차 구별 되지 않는 곳. 영어 잘해도 이곳만 들어오면 저절로 혀가 굳는 곳. 서울에서 이억만리 떨어진 미국 서부 끝자락에 자리 잡은 또다른 한국 마을이 ‘서울특별시 나성구’다.
한국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타운의 관심은 온통 한국으로 쏠려있다. 후보별로 ‘대장정’‘승리대회’‘결의대회’등 갖가지 이름의 대형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이틀전에는 한인 타운 초입 10번 프리웨이 입구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대형 한국어 프랭카드까지 등장했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데일 것 같은 대선의 뜨거운 열기로 ‘나성구’가 절절 끓는다. 뉴욕타임스는 얼마전 편지보내기 등의 대선 지원에 열정을 쏟는 한인들의 스토리를 보도했다. 물론 비아냥 조의 기사다.
올 한국 대선에는 LA산 조커 등장으로 재밋거리가 더했다. ‘김경준’과 ‘에리카 김’ 남매 카드다. 강제 송환에 대항하며 3년간 쓴 변호사 비용만도 3백여만 달러가 넘는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굳게 버텨왔던 김경준씨가 대선을 한달여 남겨놓고 한국으로 자진 송환돼 갔다. 일명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선의 유력 후보인 이명박씨가 연루됐다는 김씨의 주장이 이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거리 였다. 정책보다는 인신공격에 능숙한 한국 대선에서는 이만한 흥밋거리 찾기도 힘들었다.
김씨의 자진 송환, 김씨 부인 이보라씨의 LA기자회견, 증거 제출을 위한 김씨 모친의 한국행,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한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의 한국 특파원 골라가며 인터뷰하기 등등. 한국 언론을 적절히 이용하며 파도를 몰아치듯 단계별로 이 후보를 압박하던 김씨 가족의 한달여에 걸친 ‘항쟁’은 결국 검찰의 이 후보 무혐의 처리로 끝났지만 지켜보는 한인들에게 짜릿한 흥분감 마저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선거가 압도적으로 끝나가는 요즘에는 흥밋거리를 이어가려는 한인들의 입소문이 또다른 재미를 부추기고 있다. “과연 그럴까”에서 “그랬다”“그랬다더라”등등 이명박 후보의 관련설에서부터 심지어는 추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풍문이 나돌더니 얼마전부터 ‘사진’ 괴담까지 나돌고 있다.
이제 미주 한인들 사이에 시청률 1위를 기록하던 한국 대선 드라마도 4일후면 최종회를 맞는다. 유력 후보의 당선으로 끝나든, 약세 후보의 역전극이 재연되든 ‘나성구’를 절절 끓게 만들었던 대선의 열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것도 우리에게 돌아올 것 하나 없는 남의 집 잔치로 말이다.
한국 대선에서 보여줬던 한인들의 열기를 이대로 식힐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국 정치에 몰입하자는 것은 아니다. 1월3일 아이오와를 시작으로 열리는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이라는 또다른 드라마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이슈도 경제 살리기다. 이라크 악수에 주택경기 곤두박질, 유가 인상에 달러 약세까지 겹쳐 흔들대는 미국 경제를 되살릴 적임자를 뽑는 선거다. 표류를 거듭하는 이민 정책의 향방도 이번 선거에 달려 있다. 하나같이 미국사는 한인들의 민생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항들이다. 연방 선거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이반 버크 LA카운티 수퍼바이저 후임을 뽑는 선거도 남아 있다.
미국 정치는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준다. 한인사회가 돈내는 ATM기로만 정치인들에게 인식돼서는 안된다는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시장의 조언처럼 미국 정치인들은 돈보다 관심과 참여를 더 무서워 한다. 한국 대선에 쏟았던 열기를 이곳 나성구로 옮겨 놓는다면 한인들 무서운줄 모르고 돈만 뺏어 가려는 미국 정치인도 사라질 것이다.
김정섭 부국장 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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