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그렇게 지지리도 지도자 복이 없을까. 지난 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기어이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탈당과 함께 대선 3수 선언을 강행하고 말았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는 그의 안쓰러운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쓸쓸한 가을로 몰아넣었다. 물론 일부 사람들에게는 따스함을 주었지만.
자신이 두 번이나 대표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무소속으로 나선 그는 “한나라당 후보가 매우 불안하다” “이명박 후보의 대북관이 애매모호하다” 등의 이유로 합리화를 시도했다. 원칙을 깨면서 “기본을 경시하거나 원칙 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자세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없다”는 이유도 댔다. “대통령이 꼭 한 번 하고 싶었다”는 삼척동자도 아는 진짜 이유 대신에.
출마 선언문을 보면 그는 자기만이 나라를 구할 인물이고 살신성인을 할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 듯싶다. 다른 후보를 공격할 ‘창’은 많이 갖췄지만 자신을 방어할 ‘방패’는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때문에 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많은 유권자들은 마음으로부터 그를 떠나보내며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권좌를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를 읊조려야 했다. 남가주 한인들은 ‘로즈힐스에 가 보라. 핑계 없는 무덤이 있나’하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ㆍ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라고 했다. ‘순신불사’의 어귀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는 그에게, 자신을 죽여 나라를 구함으로써 길이 빛나는 이름이 된 이순신 장군도 지하에서 슬피 울며 물을는지 모른다. “그대, 난중일기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나의 말은 읽지 못했는가. 아니면 거꾸로 읽었는가”라고.
어쩌면 최근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사전에 실려 물의를 빚었던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말에 이어 ‘회창스럽다’는 단어가 탄생할지 모른다.
당내 경선에서 진 후보는 탈당하여 대선에 참가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이인제 방지법’에 이어 대선 전 일정기간까지 특정 당에 몸담고 있던 사람은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다는 ‘이회창 방지법’이 나올지 또 누가 알랴. 판세를 지켜보다 슬쩍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그대는 어디서 무슨 병 깊이 들어’라는 시 제목이 절로 떠오른다.
대선을 불과 30여일 앞둔 시점, 한국의 정계가 난장판이다. 야권에서는 당내 경선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신이 창당했던 정당에는 ‘회충 회창’이 되고만 노정객, 깨끗한 승복으로 칭찬 받았으나 ‘그네 근혜’ 되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보여준 여정객, BBK 사건 수사 결과에 따라 자칫 ‘쪽박 명박’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유력 후보 등이 판도를 좌우할 주요 플레이어다.
상대측인 범여권은 또 어떤가. 후보 지지율이 도토리 키 재기 격인 가운데, 당리당략에 따라 먼먼 길을 돌아 ‘도루아미타불당’을 만들더니 조만간 또 한 번의 합당을 거쳐 ‘도루묵당’으로 이름을 바꿔달기로 했단다.
애오라지 정권욕에만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들을 보노라니 무슨 병자들의 집단 같아, 몇 달 전 약 25년만에 시민권 신청을 한 기자의 마음이 씁쓸하다.
더불어, 어쭙잖게 읊조리며 살아온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의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이은상 시 ‘조국강산’ 일부)는 구절이 별안간 초라하게 여겨진다.
김장섭 특집1부 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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