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문의 일종인 워터보딩(water-boarding)이 위법이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그것이 고문이라면 위법입니다.”
“워터보딩은 익사의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취조 기법으로 국제 인권단체들은 물론 미국 정부도 전쟁범죄로 간주해왔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워터보딩이 위법이라고 생각합니까?”
“관련 기관의 브리핑을 받은 바 없어 개인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 연방 상원 법사위 인준 청문회에서 마이클 뮤케이시 법무장관 지명자와 민주당 소속 패트릭 리히 법사위원장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 내용이다.
리히 위원장을 비롯한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법무장관 지명 인준동의안 표결에 앞서 뮤케이시로부터 워터보딩이 위법이라는 답변을 얻어내려 파상공세를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워터보딩은 악명 높은 스페인의 종교재판 시절에 처음 개발된 취조 기법으로 젖은 수건으로 덮은 피취조인의 얼굴에 물을 부어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유발하는 대표적 물고문이다.
테러용의자 관련 재판으로 명성을 쌓은 전직 ‘공안 판사’ 뮤케이시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가 워터보딩을 위법 행위로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진짜 이유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비밀명령에 따라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들을 물고문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폭로기사로 CIA가 워터보딩을 사용한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진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 이를 위법행위로 못 박는다면 부시 대통령이 난처한 입장에 빠질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뮤케이시는 워터보딩이 법으로 금한 고문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대통령의 전시 비상대권이 ‘초법적 권한’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라는 연방 의회의 청문회에서, 그것도 법무부 수장으로 지명된 전 법조계 인사가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 명백한 고문 행위를 위법이라 말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치공작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CIA요원 신원 누설, 미국인들에 대한 영장 없는 불법도청, 해외 비밀 교도소 운영, 정치성향을 기준한 연방검사 무더기 해임 등 부시 행정부의 도덕적 권위 상실을 부른 스캔들에 또 하나의 삽화가 보태진 셈이다.
숫한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부시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믿음을 얻지 못한 지도자다. 공자의 풀이에 따르자면 그는 영락없이 실패한 대통령이다.
논어 안연편에서 공자는 국가 경영의 필수조건이 무엇인지를 묻는 자공의 질문에 군사력(兵), 경제(食)와 국민의 믿음(信)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조건으로 그는 서슴없이 ‘信’을 꼽았다. “국민은 믿음 없이는 서질 못한다”(民無信不立)는 이유에서다. 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을 한 묶음으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믿음이고 이를 심어주는 것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매긴 이 세가지 필수조건의 우선순위는 공자와는 완전히 역순이었다.
지난 2001년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물리적 힘, 즉 ‘兵’에 최우선 가치를 부여한 반면 국민과 국제사회의 믿음을 끌어내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정해진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외면 한 채 오직 ‘힘’ 위주의 일방적 국가전략을 주도해온 부시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나라 안팎으로 신망을 잃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도자 진정한 힘과 권위는 ‘총’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의 신뢰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윽박질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힘으로 빼앗아 올수도 없다. 먼저 주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평범한 진리를 놓친 탓에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힘없고 외로운 지도자로 전락했다.
이강규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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