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묵묵부답’
23세 연하의 여인을 위해 권력과 국가 예산을 사용, 직권남용 혐의로 11일 구속된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비참했다. 한 때의 달콤한 사랑에 대한 혹독한 대가였다. 또한 그 공직자의 비호 아래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비상하려던 신정아(35)씨의 날개 없는 추락은 명함 위주의 한국사회도 그리 녹녹치 않음을 실감케 했다. 변-신씨의 만남에서 추락까지를 살펴본다.
●위험한 만남
기획예산처 행정예산국장으로 잘 나가던 변씨는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현대미술아카데미를 수강했다. 당시 강사는 금호미술관 큐레이터인 신씨. 고교 시절 미대 진학을 꿈꿀 정도로 미술에 심취한 변씨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20대 중반의 신씨는 예술에 관한 대화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권력과 가짜 박사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미 캔사스대 학부를 3학년으로 중퇴한 신씨는 1997년 미국에서 귀국 후 금호미술관에서 영어 통역 아르바이트생으로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예일대 박사학위를 밟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5년 뒤 당시 예일대 한국 동문회장이던 고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이 ‘인터넷으로 예일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신씨의 거짓말을 간파해 그만두게 했으나 1년 뒤인 2002년 신씨는 성곡미술관에 재취업하는데 성공했으며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출강까지 하게 됐다.
●빗나간 사랑
둘의 관계는 2002년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변씨는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을 거쳐 지난해 7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신씨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승진했고 동국대 교수라는 명예까지 거머쥐었다.
신씨의 뒤에는 변씨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산업은행 대우건설 등 기업체들로부터 10억여원의 미술관 후원금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변씨의 지원 덕분이었다. 동국대 교수 임용 역시 2005년 6월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변씨가 홍기삼 동국대 총장을 직접 만나 부탁한 결과였다.
두 사람은 단순히 ‘가까운 사이’임을 넘어 부적절한 스캔들로까지 발전됐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쩡아에게’ ‘쩡아가 오빠에게’라는 문구를 써가며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변씨는 ‘너네 집에서 치킨 시켜 먹을까?’ ‘오늘 저녁에 만날까?’라는 내용의 연서를 보내고 고가의 목걸이도 선물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 변씨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 팰리스 레지던스 호텔에 방을 구했고, 곧이어 신씨는 변씨의 임시거주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세종로 오피스텔 ‘경희궁의 아침’으로 이사했다.
●예견된 추락
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됐다. 동국대 이사 장윤 스님이 “신씨가 가짜 학위 소유자”라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5월 이사직에서 해임된 것이다. ‘고졸 학력 여성의 아찔한 사기극’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정부 최고위층 배후가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8월 말 변씨가 신씨의 가짜 학위를 비호한 정황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고 검찰 수사에서도 두 사람의 빗나간 사랑이 재확인됐다.
결국 검찰은 변씨에 대해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신씨에 대해서는 사문서위조, 업무방해, 횡령 등의 혐의로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이 받아들여 둘은 11일 구속,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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