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콘도란 조그만 타운이 있었다. 남미의 내륙지방에서 바다와 가까운 곳을 찾아 삶의 터전을 세우려는 초창기 인물들이 터를 잡은 뒤에 그 나라의 좌파세력들의 정신적인 중심이 되어 버린 곳이다. 여느 타운이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의 갈등, 번영, 야욕, 영웅심, 좌절, 본능, 사랑, 저주, 전통, 혁명, 성장, 쇠퇴 등등 인간의 삶에 연관된 모든 것이 보이는 타운이었다.
이 타운에 출장 온 한 유럽 상인이 이곳의 바나나 맛에 반한 뒤 구미의 자본 세력들이 들어와 바나나 공장을 세우면서 이 타운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도시화의 나쁜 영향을 경험하게 된다. 저임금과 노동착취에 대항해서 타운 중심에 있는 광장에 모인 3,000명의 바나나 공장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기업주들 쪽과 결탁한 보수파 집권 정부는 기관총으로 대량 학살하게 되고 그 시체들을 기차로 대량 바다에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 타운은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남미 콜롬비아 태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케즈의 대표적 명작 ‘100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얘기다. 부엔디아란 가문의 가족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잔잔히 얘기하면서 모든 인간의 고독을 공통분모로 해서 우리의 인간사를 살펴보는 소설인데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환상과 현실이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옛날 무미건조한 한글 번역판으로 재미없이 읽으신 분들에겐 그레고리 라밧사의 아름다운 문장의 영문판을 권한다.)
원저자도 이 소설에 대한 영감을 자기 할머니의 옛날 얘기에서 찾는다. 나이가 워낙 많다보니 할머니의 얘기는 시대와 사건을 초월하고 또 환상과 현실을 초월한다. 할머니의 얘기와 얼굴 표정이 환상과 현실을 똑같은 정감과 실감을 가지고 취급하게 되니 듣는 이의 감정에 놀랄만한 영향과 무감각을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살이에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환상인지 현실이 복잡해지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뒤섞여 버린다. 지금 한국의 보기 민망스런 가짜학위 얘기들을 듣는 허망한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다.
세상이 안정된 시절에는 사회의 중요 위치에 있는 이들의 가짜학위란 상상이 안 되었다. 어느 대학에서 무슨 박사학위를 한 이들에겐 ‘주위의 사람들’이 있다. 어느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느 학생 아파트에서 살았는지, 그때 테니스를 잘 쳤는지 못 쳤는지도 많은 이들이 잘 안다. 박사학위까지 갈 것 없이 하지도 않은 공부 했다고 허풍 치다간 반년도 못 가 사람 망신하기 십상이다. ‘주위의 사람들’이 평소의 검증 시스템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세상이 바뀌었다. 여러 번 바뀌었다. 그동안 ‘투쟁’을 하고 도망을 다니던 이들이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를 들어가게 되고 이들과 ‘코드가 맞는’ 인맥들이 지도적인 자리에 가서 봉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력보다 넘치는, 때로는 엄청나게 넘치는, 자리엘 가게 되었다. 군수가 차관보, 차관을 거치지 않고 행자부장관이 되고 중학교 교장이 교육 부총리 자리의 유력한 후보엘 올라가게 되고 하는 건 안정된 세상에선 생길 수 없는 일이다. 옛날엔 엄청나서 언감생심도 못하던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권에서 20명 가까운 이들이 나오고 하는 기가 막히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선 이런 마음들이 생긴다. 저런 이가 대통령을 하는데 나라고 이런 자리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런데 그냥 모양새로 좋아 보이는 학력 조금 보기 좋게 화장하는 거 크게 나쁠 게 있을까. 한번 거짓말 하다 보니 힘들게 공부하는 것보다는 양심 조금 속이는 건 무척 쉬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옛날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들이 대량으로 나오는 판에서는 이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고 누가 그 사람 어떻고 얘기하기도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우리 전부가 마콘도에서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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