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에서 풀려난 뒤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떠나 3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도착한 유경식씨(맨 왼쪽) 등 한국인 피랍자 일행이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본사 전송>
서명화씨가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자신의 흰색 바지 안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몰래 기록한 피랍일지의 모습. <본사 전송>
인질들이 말하는‘악몽의 41일’
서명화씨 깨알글씨로 참상기록
악몽과도 같은 41일이었다. 지난달 29일과 30일 탈레반으로부터 풀려난 피랍자들이 마침내 서로 눈물의 재회를 한 뒤 털어놓은 피 말리는 억류생활은 ‘공포’와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중 서명화(29)씨는 자신이 입었던 흰색 바지 안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악몽의 41일을 몰래 적어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을 알 수 있게 했다.
■피랍 상황
납치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7월19일 카불 출발 전 전세버스 기사가 바뀌었고, 가즈니주에서 곧 내릴 것이라며 현지인 2명이 탔다. 30여분 뒤 이들은 AK 소총을 쏘면서 버스를 세웠다. 이어 무장 탈레반 2명이 올라타 모두 내리게 한 뒤 승합차에 나눠 태웠다. 탈레반은 선교봉사단의 동선을 미리 알고 납치요원을 승차시킨 셈이다. 탈레반은 처음에는 사복경찰이라며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하다가 소총으로 위협하면서 ‘우리가 알카에다’라고 태도가 돌변했다.
탈레반은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서 “잘못하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협박해 패닉상태에 빠졌고 고 배형규 목사는 실신했다.
■ 피 말리는 억류생활
피랍 5일 동안 이들은 한 장소에 감금됐다. 창문도 없는 반지하의 짐승우리 같은 곳이었다. 단원들은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탈레반은 이를 단식으로 오해했다.
이후엔 음식이 불충분해 기운이 없어 자고 또 잤다. 비스킷을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손짓 발짓을 하기도 했다. 감자 2개를 쪼개서 4명이 나눠 먹은 적도 있다. 나중에는 적응이 돼 흙과 돌이 묻은 감자도 먹을 수 있게 됐다.
3, 4명씩 작은 그룹으로 나뉜 뒤에는 10차례 이상 장소를 옮겼다. 달이 없는 깜깜한 밤에 헤드라이트를 끈 오토바이에 태워졌지만, 때론 걷기를 강요당했다.
일부 단원들은 갇혀 있던 토굴에서 탈레반과 탈레반이 ‘강도’라고 부르는 집단과의 총격전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인터뷰 내용도 탈레반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일부 단원들이 내외신과의 통화에서 피랍자 일부가 위독하다고 얘기한 것은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구출해 준다’며 말을 시킨 것이었다.
■ 살해소식
단원들은 살해된 두 사람이 특별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본보기’용으로 무작위로 뽑혔다고 전했다. 심씨의 경우 여자 4명 및 고세훈씨와 함께 있었는데, 탈레반이 갑자기 끌고 나갔다.
단원들은 “탈레반이 들려준 영어 라디오방송을 통해 남성 2명의 살해소식을 알았다”며 “누군지는 몰랐지만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항하거나 탈주 오해를 받고 사살된 게 아닌지 걱정했고, 배 목사는 살해된 것으로 추측했다”고 전했다.
■ 바지 피랍일지
서명화씨가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몰래 바지 안쪽에 적은 피랍일지는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인질 억류생활의 고통을 그대로 전해줬다. 서씨는 처음에 노트에 일기를 쓰다가 탈레반이 수시로 압수해 가 7월24일부터 감시를 피해 흰색 바지 안쪽에 볼펜으로 일지를 썼다. 일지에는 이동경로와 주요 사건, 성경공부 내용 등이 깨알같이 적혔고 ‘교촌치킨, 해물파전, 닭도리탕, 설렁탕, 신라면, 김치찜, 국수’ 등 14종류의 먹고 싶은 음식 명단을 적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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