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쟁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쟁이 가져오는 문화의 파괴성에 있다. 우리민족의 문화와 언어도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황폐해진 적이 있다. 나이 드신 분들 중 상당수가 전쟁 이후에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이 부대 근처에서 쓰는 말씨들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적들이 있다고 들었다.
어쩌다 미군부대 근처에서 만난 미군들이 쓰는 한국말은 거의가 욕이 섞인 거친 말들이었다 한다. 계급이 낮은 미군들이 좋은 한국말을 별로 배우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접촉하는 한국인들이 좋은 말들을 쓰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보인다. 사회의 거의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던 이들은 어떤 때는 좌절감으로 가득한 그들의 가슴을 카타르시스 하는 기분으로, 때로는 장난으로, 가까운 미군들에게 욕부터 가르쳤으리라 짐작한다. 어쩌다 이들 미군들이 한국 다른 동네에 들를 때 쓰는 한국말은 경어가 아주 드물고 또 욕이 섞여 있어서 점잖은 유교사상이 바탕인 동네 어른들을 상당히 당황하게 한 적이 많다고 들었다.
필자가 오늘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타민족(특히 멕시칸) 종업원들을 쓰는 미주 한인사회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그들에게 사용하는 말들에 경어가 거의 없고, 그것이 가져올 장기적인 영향이 적잖이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타민족 직원들이 쓰는 한국말이 그나마 작은 규모로 그들 사회에 전파되는 우리 언어가 될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를 걱정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부디 멕시칸 직원들에게 말을 할 때 경어를 쓰셨으면 좋겠다. 바쁘게 일하는데 말꼬리가 길어지는 경어를 쓸게 무어냐고 하시면 설명이 길어지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오신 분으로서 꼭 지금의 말버릇들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된다.
첫번째 이유는 그들에게서 한국말을 들어야 하는 손님들이 고운 우리말 경어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들에게서 하대를 하는 우리말을 들을 때 당황하는 손님들이 그동안 많았다는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손님들을 대접하려면 타민족 직원들에게 좋은 말을 써야 그들이 좋은 한국말을 배울 수 있고 쓸 수 있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 언어와 문화가 타민족 사회에 전파될 때 우리의 좋은 것들이 전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세번째 이유는 타민족 직원들에게 쓰는 경어가 비즈니스 경영에 상당한 긍정적 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인 자영업자들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을 깔보는 마음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미고, 저기 박스 이리 가져 와가 주는 분위기와 리카도, 저기 박스 가져다 주세요는 엄청나게 다르다. 한국말을 모르는 이에게 욕을 하면 그 욕할 때의 얼굴 표정이 금방 그것이 욕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는 것처럼, 경어를 쓸 때의 한국인의 표정은 하대를 할 때와 많이 달라진다.
근본적인 메시지는, 타민족이라도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인격에 대한 존경을 하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점점 날이 갈수록 우리 한인 비즈니스들의 타민족 인력에 대한 의존은 심해간다. 그들을 존경하면서 일해야 한다. 왜 우리가 타인들에게 공손히 대하는가. 타인들에게서 우리가 존경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경어를 쓰면 그들이 쓰는 우리말들이 아름다워지고 듣기 좋아진다. 이건 실행에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참고로, 필자가 관련되어 있는 은행에서 여신심사를 할 때나 한국말로 고객들의 점검을 할 때, 우리 직원들은 꼭 김 사장님은 이렇게 생각하십니다의 경어와 존칭을 쓴다. 고객들이 없이 은행 내에서 직원들만 있을 때의 얘기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그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부터가 좋게 보인다. 우리 민족은 막 되먹은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