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수년간 끌어오던 북핵 문제가 2.13 합의 이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엊그제 남북한은 이달 말 2차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그것도 한국과 미국의 정부가 임기 말에 처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인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임기 말에는 외교 안보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은 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는 느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28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열리게 되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관해 국내외 의견이 분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회담의 시점이나 의도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은 물론 회담성과에 대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야당을 비롯해 한편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대로 다른 쪽에선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전기가 될 것이란 섣부른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나 정전체제 역시 미국이 배제된 채 남북한이 동의해서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다.
대신 북한이 왜 이 시점에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상회담 개최에 목말라 하는 남쪽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가 느리게나마 진전을 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왜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북한의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가능하다. 즉 북한은 정상회담을 그들이 최대 과제로 꼽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의 지렛대로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2.13 합의의 초기이행 조치는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지만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수월치 않다. 미국은 핵무기,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등 소위 핵 프로그램 리스트를 요구할 것이고 북한이 포기할 수 없는 경수로 문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시간도 많지 않다. 북한으로선 클린턴 행정부 임기 말 잘 진행되던 북미정상화의 길이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일그러졌던 경험과 교훈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도 올 연말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적어도 처음 몇 개월은 남북관계가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역시 기본적으론 대북 포용정책을 펴겠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정했을 때 북한으로선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에 조급증을 가질 법 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수로 문제에 남한의 협조를 요구하는 등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한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까지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북한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하기 보다는 이미 한나라당 정부의 등장까지 고려한 대책을 수립하고 있는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도 고도의 전략적 사고를 갖고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비핵화, 평화체제 선언과 같은 상징적인 성과물보다는 실질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던 1차 정상회담과는 다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많은 성과에도 불과하고 국민적 합의를 모으지 못해 비난을 받았던 경험과 아쉬움을 기억해야 한다.
한반도에 일고 있는 급물살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신기욱 / 스탠퍼드 대학교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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