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0일 동부시각 오후 3시20분. 연방하원 의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하원결의안 ‘HR 121’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지난 1월 마이크 혼다의원이 발의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통과를 위한 풀뿌리 노력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의회 방청석에서 오전부터 가슴을 졸이며 본회의 상정과 투표결과를 기다리던 많은 HR 121 연대의 자원봉사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며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았다.
7월30일 당일 오전에도 연방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탐 랜토스 의원 사무실을 방문하여 다시 한번 위안부 결의안 지지를 부탁하셨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눈가에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레인 에반스 전의원이 1999년에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결의안을 발의한 후, 네번의 실패 끝에 8년만에 이루어낸 성과다.
작년에 발의되었던 ‘HR 759’는 외교 상임위원회에서는 통과되는 성과를 얻었으나 결국 본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한채 사장되었고그 외의 다른 결의안들은 외교상임위 통과는 커녕 발의된 사실조차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언론의 주목이나 일반인들의 반향을 받지 못하던 종전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과 달리 ‘HR 121’이 세계 주요언론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통과되는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캠페인이 과거 다른 결의안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여년간 레인 에반스의원 같은 하원의원이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부각시키려 힘써 온 것과 국제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인권단체들의 노력이 소중한 기반이 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HR 121’ 캠페인에서는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미주 한인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풀뿌리 활동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과거 다른 캠페인들과 다른 점이다.
‘HR 121’ 저지를 위해 일본의 로비스트들이 내세운 핵심적 논리의 하나는 일본과 주변국가들의 오래된 역사 분쟁에 미국의 의회가 간섭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적당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미주 한인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미국이 나서야 할 문제”라는 논리로 반박하며 미국 시민의 입장에서 일본의 로비에 대항하였다. 이러한 접근방식으로 의원들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의 일본군위안부 단체를 비롯한 국제인권단체의 로비보다 미국의 참정권을 갖고 있는 미국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했고 결과적으로 상당히 주효했다.
지난 7개월간의 ‘HR 121’ 캠페인에서 보여준 미주 한인사회의 풀뿌리 활동은 정치력 신장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고도 할 수 있다. 남가주 지역에서만 2만5,000장이 넘는 지지 서명지를 받아냈고, 각 지역에서 지역구 연방하원을 상대로 공동발의자 참여를 요구하는 전화걸기와 사무실 방문 또한 활발히 이뤄졌다.
또한 1세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모금한 귀중한 성금은 캠페인 막바지에서 이용수 할머님의 초청과 워싱턴의 유력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의 로비활동에 요긴히 쓰였다. 이러한 1세 한인들의 재정적 지원, 자발적으로 폭넓게 이루어진 지지서명 활동, 그리고 1.5세와 2세 한인들이 주류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고 주류사회와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담당하면서 아무도 장담 못했던 ‘HR 121’ 통과라는 큰 성과를 내게 된 것이다.
한인사회가 항상 목마르게 주장해 온 정치력 신장은 구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류정치 참여라는 것이 유명정치인의 후원회 참여나 선출직 출마만은 아니다. 한인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어 한인사회내의 여러 세대가 협력하여 다양한 차원의 활동을 벌여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정치력 신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HR 121’ 통과 캠페인은 귀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승호 변호사 / HR 121 가주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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