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남매를 입양한 노영란(48)씨가 집 거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막내아들 성근(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노영란씨, 셋째딸 진영, 큰딸 한나, 둘째딸 정민양. <신효섭 기자>
한국서 입양 세리토스 김기철·노영란씨 부부
“행복도 4배… 매일매일 잘했다는 생각들어”
“4남매요? 키울만 해요. 가장 보람을 느낄 때요? 매일 매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걸요.”
누구에게나 자식은 특별하겠지만 세리토스에 거주하는 김기철(48)-노영란(48) 부부의 1남3녀는 이들 부부에게 남다른 의미다. 큰딸 한나(9학년·14), 둘째딸 정민(6학년·12), 셋째딸 진영(6학년·12), 막내아들 성근(2학년·8). 바로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가 처음 입양을 결심한 것은 지난 98년. 결혼 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입양을 결정했고 한국을 방문, 경남 김해에 있는 방주원에서 한나를 만났다. 당시 한나가 네 살이었다.
입양이 결정되면서 한나는 김씨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딸이 됐다. 그 딸의 첫 번째 소원은 동생 한명을 더 데리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늘 자신의 옆에서 같이 잠자리에 들고, 눈을 뜨곤 했던 정민(당시 2세)이었다.
“처음 고아원에 갔을 때 남편은 한나를, 저는 정민이가 마음에 들었어요. 남편 뜻을 존중해 한나를 입양했는데 한나가 ‘한 명 더’라며 가족이 되길 원했던 사람이 60여명의 아이 중 바로 정민이였던 거에요”
묘한 인연이었다.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수속을 거쳐 지난 2002년 정민이도 미국에 왔고 2005년에는 막내 아들로 성근을 맞이했다. 셋째 진영이는 다른 가정에 입양 됐다가 양부모가 입양을 포기하면서 갈 곳이 없어졌지만 김씨 부부가 딸로 받아들였다.
김씨는 “아이들 모두가 방주원에서 함께 뛰어놀다 미국에 왔기에 입양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며 ”친부모가 사정이 있어 보호를 못해 양육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숨기지 않고 말해 준다”고 밝혔다.
김씨 부부가 입양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김씨의 부친의 영향이 컸다. 대한항공 부사장까지 지낸 김씨의 아버지가 한인을 입양한 외국인 손님을 집으로 자주 초청했기 때문이다.
아내 노씨는 “다른 부모들은 내 배 아파서도 두 명 밖에 못 낳는데 네 명이나 어떻게 키우냐고 말하지만 매일 매일 아이들과 즐거움이 가득해 키울 만 하다”면서 “아이들 스스로 엄마, 아빠가 우리를 딸, 아들 삼아 줬으니까 자신들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또 입양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라며 밝게 웃었다.
현재 김씨는 엠펙(MPAK·한국입양홍보회) 미주지역 관계자로 지난 24일부터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재외동포재단 주최 ‘국외입양한인 모국연수’에 참석 중이며 이 곳에서 자신의 가족을 예로들며 재미동포 가정으로의 입양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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