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론 브라워드 한국 11번 방문 열성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미군 노병의 동료 유해 찾기 노력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북가주 데이비스 출신으로 한국전 참전 후 고향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며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올해 73세의 론 브라워드(사진). 그는 하와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군 유해발굴 전문부대인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에도 적을 두고 미군 유해 찾기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늘 한국전에 같이 참전했다가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유해 찾기에 가 있다. 이 때문에 브라워드에게 메모리얼 데이가 따로 없다. 하루하루가 전몰장병들을 기리고 생각하는 날이다.
그는 이달 초에도 한국을 방문, 춘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변 계곡들을 둘러봤다. 모든 게 바뀌었지만 한국전 당시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노병은 미 해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이 곳 부근에서 사망한 동료 워런 래릭의 유해를 찾는 일에 골몰했다.
당시 래릭은 기관총 사수로 당시 21세였고, 브라워드는 막 18세가 됐을 시기였다. 사실 그들은 동향 출신이고 래릭은 브라워드의 형과 절친한 친구였다. 래릭은 형의 친구였지만 군대에선 고락을 같이한 동료였던 셈이다.
당시 미 해군은 한국에서 거의 1년 가까이 전투를 치렀고 그해 4월 중공군과 17시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래릭은 등에 총격을 받고 즉사했고, 그의 사체는 영영 발견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래릭은 아직도 57년 전 발발한 한국전의 실종자로 분류돼 있다. 1953년에 종료된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은 8,100명이 넘는다. 래릭의 부친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들의 유해를 확인, 고향에 묻힐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11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다. 때로는 미군 유해 발굴팀과 동행했고, 때로는 개인자격으로 방문했다. 한국의 전투 유적지를 찾아다니지 않을 때는 주로 고향 데이비스에 있는 자택의 과거 군기록물들을 뒤지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브라워드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에서 “당시 참전 미군의 75% 정도가 21세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며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할 것”이라며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유해 찾기가 그의 마지막 임무임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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