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재학생들의 학년말 시험과 졸업식이 끝나는 늦은 봄이면 미전국의 대학 캠퍼스들은 거대한 정크야드로 변한다. 학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가 산더미다. 그 ‘쓰레기’를 살펴보면 ‘버리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 요즘 젊은 세대의 소비면모를 읽을 수 있다.
미 대학들, 학생들이 버린 생활용품 처리에 고심
‘버리는 문화’ 세대의 예사로운 소비면모 드러내
냉장고·TV에서 옷·샴푸까지 가게 차려도 될 정도
대청소 자원봉사 통해 구호단체 기증, 연례행사로 정착
<포모나 칼리지의 ‘여름쓰레기’ 더미.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버리고 간 물건 중엔 아직 멀쩡한 생활용품들이 많아 자원봉사자들이 분류 정리하여 자선기관으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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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다 떠난 지난주 남가주의 포모나칼리지도 기숙사 대청소를 실시했다. 각층의 복도와 라운지를 가득 메운 생활용품들이 정말 대단했다. 50개의 미니냉장고, 40개의 컴퓨터 프린터, 수없이 많은 마이크로웨이브 오븐과 윈도우 팬, 천정까지 쌓인 매트리스, 산더미같은 베개와 옷, 카우치를 비롯한 갖가지 가구들, 그리고 가게를 하나 차려도 될 분량의 세탁비누와 샴푸, 책과 라면, 자전거, 동물인형, 와인잔, 섹시한 속옷까지.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재학생들까지 왜 이처럼 멀쩡한 물건들을 다 버리고 가는 것일까. 물건들을 챙길 ‘시간과 공간과 욕망’ 모두가 다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집이 먼 학생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도 가을이면 또 다시 클락 라디오와 책꽂이 등을 빠짐없이 새로 사주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이 그렇다.
생활용품 버리기는 이제 미 대학가의 봄철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학생들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당연시 되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포모나 칼리지를 비롯한 USC, UCLA, UC어바인 등 상당수의 캠퍼스 운동가들은 ‘이건 너무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숙사 쓰레기를 기부하고 재활용할 방안을 연구했다. 낭비풍조와 쓰레기처리 문제를 동시에 해소하기 위해서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 등에선 대규모 야드세일을 열어 이익금을 구호기관에 기부하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 와서 기숙사 쓰레기를 구분하고 정리해 보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을 내버렸는지 깨닫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라고 포모나의 최근 졸업생 케이티 렌호프는 안타까워한다. 렌호프가 속한 자원봉사단 ‘대청소작전’은 1주일동안 캠퍼스 쓰레기를 모아 분류와 정리, 빨래와 설겆이 등 청소작업을 거쳐 6개 자선단체에 보내고 있다.
플로리다대학도 최근 20톤의 ‘아주 쓸만한’ 생활용품을 구세군과 푸드뱅크등 자선기관으로 보냈다. “한 15년전과 비교해도 요즘 학생들은 확실히 버리는 문화 세대입니다. 쓰고나면 다음을 위해 아껴두지 않아요”라고 이대학 학생주거담당 디렉터 노버트 던켈은 말한다.
원인 중 하나는 급변하는 테크놀러지 때문이다. 내년이면 더 빠르고 더 값싼 프린터가 나올텐데 헌것을 그냥 두어둘 필요가 어디 있는가?
아주 스포일된 학생들도 있다. 플로리다대학의 한 여학생이 ‘비우고’ 간 기숙사 클로젯엔 옷과 구두가 가득했다. 모든 물건들이 너무 그대로 있어 학교가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다 버리세요”가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지난해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은 66톤의 ‘쓰레기’를 모아 캠퍼스 스테디엄에서 대규모 세일을 열었다. 밍크코트, 실버 펀치보울, 33대의 TV, 166개의 윈도우팬, 270개의 스키부츠 등이 선보인 세일의 수익금은 5만달러. 유나이티드 웨이로 보내졌다.
기숙사 쓰레기엔 지난 9월 엄마들이 열심히 사서 챙겨보냈던 청소기, 이불시트세트, 다리미 알람클락, 데스크 램프 등 ‘정상적’ 용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꽤 많은 동전이 담긴 커피머그에서 애완용으로 몰래 키우던 5피트 길이의 보아구렁이까지 아이템도 상당히 다양하다. 권투글러브, 셀린디온 향수, 초대형 목마, 긴 칼과 세트를 이룬 글래디에이터 의상, 보기에도 민망한 야릇한 속옷과 야한 의상들… 맥주나 보드카는 간혹 발견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약이나 불법복제 CD는 없다. “불법적인 것들이 대학생들에게 대단히 소중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건 빠짐없이 다 챙겨갔거든요”라고 한 자원봉사자는 말한다.
<포모나칼리지 학생자원봉사자가 ‘쓸만한’ 물건을 골라 옮기고 있다>
“둘 데가 없어요!”
낭비풍조가 심하다는 비난에 억울하다는 학생도 한두명이 아니다.
“도대체 둘 데가 있어야지요!”라고 그들은 항의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필수품’으로 학생들이 다시 사들이는 자전거와 마이크로웨이브 오븐도 단골 쓰레기에 속한다. 많은 대학들이 여름방학동안 이것들을 간수해둘 개인용품 스토리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중엔 각종 서머 클래스로 기숙사를 외부학생들로 가득 채우고있는 학교로서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
포모나 칼리지는 그래도 낫다. 재학생에게 여름동안 5개 박스분의 개인용품 저장공간을 허용한다. USC나 페퍼다인대학은 그나마 없다. 학교인근 상업용 스토리지에 임대료를 내고 맡기는 학생들도 있지만 버리고 개학 때 새로 사는게 더 싸게 먹히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 따라선 방학이 가까워 오면 캠퍼스 곳곳에 커다란 통을 비치해두고 아예 필요없는 물건들을 담게한다. 따로 분류 정리할 필요없이 통째로 구호기관으로 보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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