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씨가 자신의 석방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열린우리당 유재건 의원(오른쪽)과 이경원 원로기자(오른쪽 두 번째) 등의 박수를 받으며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승관 기자>
‘이철수 사건’ 25주년 심포지엄… 그때 그 주인공의 외침
이철수씨 기조연설
“과중한 형벌 받거나 누명쓴 아시아계 많아”
구명운동 주인공들 재회
“아시안이라고 해서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미국내 범 아시아계 인권 운동의 효시로 기록된 ‘사형수 이철수 사건’의 주인공인 이철수(53)씨가 자신의 무죄평결 25주년을 기념해 7일 UCLA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인 등 아시아계 재소자 및 전과자 구제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본보 후원으로 이경원 리더십센터(대표 김도형 변호사), UCLA법대가 공동 주최한 이날 ‘정의의 재판-이철수 인권승리 심포지엄’에는 구명운동의 주역들과 시민운동가, UCLA 학생 및 한인 등 350여명이 참석, 무죄 평결 당시의 감격을 되새기며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이날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이철수씨는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지은 죄보다 과중한 죄 값을 받고 수감된 우리의 형제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이 갱생의 길을 걷고 사회생활에 적응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씨는 “여러분의 따뜻한 지원이 없었다면 이철수는 사형수로 삶을 마쳤을 것”이라며 “다른 재소자들도 저에게 주어졌던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수 사건’은 지난 1973년 중국계 갱단 두목 살인 혐의로 무고하게 체포된 이철수(당시 21세)씨의 석방을 위해 한인과 일본계, 중국계 등 범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10년 동안 법정투쟁, 성금모금운동 등을 펼친 끝에 그의 누명을 벗긴 ‘미국 역사상 최초의 범아시안 인권운동’이다.
당시의 구명운동 주역들이 25년 만에 재회한 이날, 사건 전모를 새크라멘토 유니온지에 특종 보도했던 이경원 원로기자와 한인사회 구명운동을 주도했던 유재건 변호사(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취재기자였던 변홍진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일본계 여론을 주도했던 워런 후루타니, 페기 사이카 등 핵심 인물들이 ‘그 때 그 감동’을 되새기고 앞으로 아시아계가 단결 성취해야 할 과제들을 토론했다.
또 당시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레오나드 와인글래스, 스튜어트 헨론 변호사와 무죄 평결에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던 사립탐정 조시아 ‘팅크’ 톰슨, 배심원 반장을 맡았다가 무죄평결 다음날 구명위원회 회원이 됐던 스캇 존슨 등 주역들도 역시 패널 토론에서 꿈만 같던 그때를 회고하며 용의자 인종에 따라 잣대가 달라지는 미국 사법 제도의 결점을 지적 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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