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한국의 자살률이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유명 연예인들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까지 최후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이 태어나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국가, 인종, 부모이다. 태어나는 것 역시 본인의 선택이 아닌 자연의 섭리요, 선물일진데 이젠 거기에 반해 목숨을 스스로 끊음으로 선택의 자유를 택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부모들 세대만 하더라도 자살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자살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보다는 힘든 삶을 선택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여러 차례가 반복되고 절망의 늪에서 허덕거리며 살더라도 가족들을 생각하고 불쌍한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고통의 마음을 추스리며 살아오셨다. 어찌 보면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오셨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십여 년 전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던 대학 동기생의 일이 떠오른다. 편모슬하에서 힘들게 자랐지만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며 늘 웃으면서 살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 모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특히 나는 그 당시에 내 주위에서 자살로 죽은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혹감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 엄습해 왔을 때 무섭기까지 했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친구 역시 본인의 의지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했던 것 같다. 그가 죽던 날, 그는 친했던 친구에게 평상시와는 다르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 친구의 유언처럼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사람들 모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경험하게 되지만 특별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진다.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세상과 이별하는 그들의 마음은 오죽하랴마는 죽은 이의 사진을 붙잡고 오열하는 부모들과 눈물 흘리며 슬퍼해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나의 일 같아 마음이 쓸쓸해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선택할 수 없는 일보다 선택할 수 있은 일들이 더 많다. 이왕이면 그것이 힘차게 울면서 태어난 이 세상을 값지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안개와 같은 이 절망의 순간이 지나고 찬란한 희망의 태양이 반드시 떠오를 것이다.
자살률 급증과 함께 출산율 또한 세계에서 최고라는 것이 참으로 아니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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