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이니까, 꼭 60년 전이다. 한 유대인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독일이다. 그 곳에서 교육을 받고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 복무를 했다.
그런 그가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그의 삶은 외형으로 보면 아주 평범한 대학 교수에 불과하다. 컬럼비아와 시카고 대학 등지에서 강의로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는 다름 아닌 레오 스트라우스다.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길은 전 세계의 민주화뿐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평화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때문에 영구전쟁이 영구평화보다 오히려 바람직 할 수 있다…”
그가 생전에 가르치던 내용들이다. 이 가르침이 일단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면서 한 사상적 기원을 이루었다. 그 대표적 후계자가 어빙 크리스톨이다. 젊은 시절 한 때 그는 공산주의 운동을 했다. 이러던 그가 냉전시작과 함께 반공에, 보수로 급선회한다.
60, 70년대 민주당 좌파의 일부 사람들도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베트남전쟁 패배는 충격이었다. 동시에 민주당 내의 반전·평화주의에 몹시 실망했다. 결국 정치노선을 바꿨다. 공화당의 반공·반소 노선으로.
분명 보수주의자다. 그런데 적극적 개입주의자란 점에서 고립주의자인 전통적 보수주의자와 구별된다. 그래서 ‘네오’란 말이 붙었다. 이들은 80년대 레이건 정권에 대거 합류한다. 그러다가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오랜 광야생활에 들어간다.
광야생활을 통해 이들은 이데올로기를 한층 치밀하게 다듬었다. 그리고는 다시 부상한다. 부시 주니어의 등극과 함께.
네오콘은 자신들이 21세기의 ‘백인의 책무’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모든 악을 청소하고 미국식 가치와 질서를 세우는 것이 의무이자 목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목표에 일관해 미국의 해외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시발점이 2001년 9월11일이다. 아젠다는 벌써부터 마련돼 있었다. 그 날이 정책 실현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쳐들어갔다. 이라크를 공격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그 일방주의에 그런데 제동이 걸렸다. 미국의 여론이, 세계의 여론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 여파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났다. 존 볼턴 유엔대사도 사임했다. 네오콘은 분명 급격한 썰물을 타고 있다.
네오콘 시대는 그러면 영원히 굿바이인가. 그 판단이 어렵다. 보수주의가 여전히 미국의 정서다. 게다가 보수주의는 단순한 정당차원이 아닌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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