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터키 대신 터키 가슴살이라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지난 주, 엄마의 실수로 기다리던 통 터키 대신 가슴살만 달랑 올라온 추수감사절 식탁 앞에서 아이들은 농담반 진담반의 식사기도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갈비도 많이 먹겠습니다!”는 기도도 덧붙였다.
남들은 구수하다고 하는 터키 굽는 냄새를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그 냄새를 견뎌낼 수 없다는 핑계로 매년 추수감사절 저녁은 아예 디너세트를 주문해 차린다. 올해 역시 인터넷에서 메뉴를 골라 전화주문을 했는데 돋보기를 끼고서도 조그마한 글씨들은 귀찮아 대충대충 읽어 넘긴 게 화근이었다. 가슴살이라는 대목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먹고 남은 터키를 처리하는 일이 늘 부담스러워 제일 작은 디너세트라는 사실에만 흡족해 주문을 결정했다. 예년보다 싼 가격을 보고도 그저 값이 내렸나 하고 잠깐 생각했을 뿐 내가 주문을 잘못했으리란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할 뻔 한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전화 한 통화로 추수감사절 디너의 번거로움을 단박에 해결했다는 사실만이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
추수감사절 아침 10시반, 뿌듯한 마음으로 주문한 디너세트를 받아든 순간, ‘어쩜 이런 일이…’ 얼마나 황당하고 아찔했는지 모른다. 큼직한 터키 대신 내 두 주먹보다 조금 더 클까 말까한 하얀 고기 덩어리를 내밀며 내가 주문한 터키 디너란다.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나?”
집으로 오면서 분명 운전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은 데도 다른 차들이 계속 빵빵 거렸다. 이러다 사고 나면 우리 애들 가슴살도 제대로 못 먹겠네, 지금 장을 봐 새로 구울 수도 없고, 올해는 할 수 없지 뭐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을 들어서는데 예상대로 기가 막혀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터키가 통째로 누워 있는 추수감사절 식탁과 위시 본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가라앉힌 아이들이 이번에는 손님까지 초대했는데 음식이 부족하지 않겠냐고 걱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갈비, 오징어 볶음, 생선찜 등 2차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추수감사절이면 항상 저녁을 일찍 시작해서 1차 터키 디너 한 상, 그리고 느지막하게 2차로 갈비 저녁 한 상, 이렇게 저녁을 두 번 차려온 덕분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 식탁에 터키가 올라오기 시작한 게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였고 터키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비롯한 어른들을 위해 한국 음식을 따로 준비해 왔던 것이다. 나에겐 냄새나고 퍽퍽하기만 한 터키를 별식으로 여기며 포식하는 아이들이 낯설었고 아이들은 터키를 맛없어 하는 나를 이상해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 세월 차려온 두 저녁 덕분인지 이제는 어른들도 터키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이 날의 갈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모두들 가슴살이 더 건강식이고 맛도 훨씬 더 좋다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리고 덕분에 갈비를 더 많이 먹게 됐다며 즐거워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덕분에 미안한 마음과 빈도가 잦아지는 아찔아찔한 실수들에 한껏 위축되어 있던 기분이 한층 나아졌다.
“뭐 감사할 것 없나?”
한참을 먹다가 딸이 엄마가 잊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둘러보면 온통 감사할 일투성이인데 얼마나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마음을 전하며 살고 있나 싶다. 추수 감사절의 감사만도 끝이 없다. 두 차례 저녁에 감사하고 맛있게 먹어준 모두가 감사하고. 특히 한국 음식을 더 돋보이게 한 터키 가슴살이 고맙고 우리 아이들이 한국 음식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어 감사하고… 내 불편한 마음을 녹여준 그 따뜻한 마음들이 감사하고. 그리고 감사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이제 한달 남은 2006년, 감사를 되새기며 보내야 하겠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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