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교사나 교육구 관계자들에게 10만 달러가 넘는 선물공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대만계 의사부부 스토리가 얼마 전 보도됐다.
자폐 증상이 심해서 15개 이상 학교에서 거부당한 아들을 받아 준 학교와 교사가 고마워서 875달러 짜리 구찌지갑을 선물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후 이들은 그보다 더 비싼 명품이나 보석, 의류등을 선물해야만 하는 입장으로 계속 몰려갔다고 한다.
교육자들이 점점 엄청난 선물을 강요했고 선물내역이 소홀해지면 아들 돌보기도 눈에 띄게 소홀해졌다고 했다. 갓 결혼한 딸 내외의 집까지 사달라고 한 교사에게는 1년간 콘도를 무료로 빌려줘야 했다. 집을 담보로 10만 달러를 대출 받아달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2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명품시계나 팔찌, 세인트존 의류, 진주와 루비 목걸이와 샤넬스카프, 부르는게 값이라는 가보 옥팔지, 고액의 백화점 선물권은 물론 고디나 초컬릿까지의 선물 내역을 소장에 기록했다. 선물을 받고 보낸 감사카드들도 증거로 첨부했다.
기왕에 준 선물들에 대해 오죽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했을까. 아들의 학교 교육을 포기해야 가능했던 결단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처음에는 용변도 못 가리고 말도 거의 못하는 장애 아들을 돌봐주는 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선물에 담았을 것이다. 자녀를 위한다면 무엇이 아까울까, 미국에 와서 영어 한마디 못하는 어린 아들들을 학교에 맡겨놓고 늘 미안하고 고마웠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가능하다면 큰 선물로 감사표시를 하고 싶었다. 이민자로서 남의 일같이 보이지 않아 그 배경이 충분히 이해 됐다.
그러나 시작부터 선물의 도를 넘어섰다. 도를 넘어선 선물은 점차 주고 받는 이들에게 종류가 다른 번뇌를 불러 일으켰다. 초심이 변하면서 양측은 이젠 이기건 지건 모두 수모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도한 선물을 받거나 강요했다는 이유로 피소된 교육자들의 해명은 나오지 않아 판단은 이르다. 소장대로라면 자녀들을 어떻게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것인가. 극히 소수가 그렇다 하더라도 충격적이다. 한국에서의 치맛바람 악몽과 촌지의 폐단이 떠올랐다. 이곳 선생님들도 한인학부모들의 후한 선물 맛에 흠뻑 빠져 들고 있다는 말도 아울러 생각났다.
선물이란 남에게 인사로나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주는 물건이다. 사랑의 정을 표하거나 신세를 졌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은 그래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뭔가 기대를 한다면 그는 이미 선물의 범위를 넘어 선 일종의 거래 수단이 된다.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순간 선물은 뇌물로 변한다. 뇌물은 일정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수하려고 넌지시 주는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뇌물에는 주는 사람의 사랑과 정 대신에 상응한 결과를 뽑아낼 기대감만 숨어 있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지면 섭섭하고 억울한 것이다. 좋은 관계가 원수처럼 변하기도 한다.
그들이 교사에게 내 아이만 특별히 잘 봐달라는 목적으로 과도한 물품이나 돈을 정기적으로 전달해 왔다면 뇌물을 수수한 것이다. 그를 받은 교육자들은 엄청난 뇌물을 수령한 셈이다. 염치없는 뇌물이란 놈이 ‘인간’ 교육자의 양심과 이성을 점차 마비시켰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는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와 따뜻한 정을 선물로 표시하는 기간이다. 선물을 주는 것은 정과 사랑, 감사의 뜻을 전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고 주고 받는 사람들에게 흐뭇함과 행복함을 선사한다. 선물은 삶에 앤돌핀이 되기도 하고 조미료가 되기도 하니 바람직하다.
진정한 선물은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것이다.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보상심리나 기대감을 방지하려면 선물을 줬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선물이라는 포장으로 혹시 뇌물을 건네고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가 정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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