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는 지난 2000년 PGA투어 무대에 뛰어들었다. 한국선수가 PGA투어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라 일본투어에서 잘 나가던 최경주가 미국에 간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왜 고생을 사서하냐”며 말렸다. 1998년 박세리가 LPGA투어에 진출, 99년까지 8승을 몰아치며 국민적인 스타로 떠오른 시점이라 “LPGA투어에 가서 잘 해라”는 맥빠지는 격려(?)를 받기가 일쑤였던 때였다.
첫 3개 대회에서 컷 탈락의 고배를 마신 최경주가 마침내 컷 통과의 기쁨을 맛본 곳은 애리조나 투산. 그때 그곳에 취재를 위해 출장갔던 기자는 그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 PGA무대에 도전하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PGA투어 선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허름한 모텔방에서 투어마사지사의 안마를 받으며 피곤한 몸을 풀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첫 컷 통과의 기쁨을 맛봤지만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던 첫 캐디 문제로 애를 썩이다가 대회를 마치자마자 그를 해고한 곳도 여기서였다. 그때 기자는 그를 대신해 캐디에게 해고통보를 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어 그해 4월 최경주가 조지아주 들루스에서 벌어진 벨사우스클래식에 나갔을 때 출장을 갔다. 사실 당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던 최경주를 취재하는 장거리 출장은 쉽지 않았으나 바로 다음 주 인근 어거스타에서 벌어지는 매스터스대회 출장계획이 있었기에 며칠 앞당겨 가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최경주는 매스터스 출전자격이 없던 때였다. 그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솔직히 겸사겸사해서 이뤄진 출장이었다. 그와 며칠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로 골프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중에 흘러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장차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복지단체를 설립하겠다는 꿈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 김현정씨의 인도로 기독교인이 된 최경주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살자는 김씨의 뜻에 따라 오래 전부터 불우아동 후원단체 등에 남몰래 사랑의 손길을 베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이들을 체계적으로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결국은 복지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의 달성을 위해 꼭 PGA투어 무대에서 뿌리를 내리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인생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갖고 있는 선수라면 틀림없이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는 지금 그 목표를 확실하게 달성해가고 있다. 지난 7년간 그가 PGA투어 무대에서 벌어들인 상금만도 1,200만달러에 육박하니 말도 안통하고 마음 나눌 친구 하나 없이 맨 주먹으로 낯선 무대에 도전했던 7년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도 변하는 다른 스타들과 달리 그는 조금도 변함없이 인생목표를 향해 탱크처럼 묵직하게 전진하고 있다. 우승상금의 십일조를 온전히 바치는 크리스천 생활은 주류언론에서도 화제가 됐고 한국에 나갈 때마다 상금이나 초청료 등으로 버는 돈보다 오히려 더 많은 액수를 불우이웃을 위해 쓰고 돌아온다. 그것도 생색내기에 바쁜 일부 스타들과 달리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드러내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전하려고 애쓴다. 그의 선행은 뒤늦게 알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아프리카 정글보다 어쩌면 더 험난하다고 할 수 있는 PGA투어 무대에 빈손으로 도전, 굵은 획을 그으며 정상급선수로 뿌리내린 것만으로도 그는 우리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을 이해하고 남을 위한 인생을 살기에 인색하지 않는 최경주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김동우> 스포츠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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