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를 끝으로 ‘문청’보다 ‘영청’이 많아졌다. 80년대 문화적 소양을 중시하는 이들에겐 ‘문학청년’기질이 다분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태생들은 ‘영화청년’이 압도적이다.
‘영화동아리’라는 게 ‘문학동아리’의 인기를 앞서간 세대. 문학서적이 아닌 영화입문서를 끼고 다닌 영청 세대로 인해 요즘 문화계는 영화의 힘이 지배적이다. 한국, 미국 할 것 없고 영화의 메카 할리웃이 있는 LA는 더욱 심하다.
영청의 기질은 문청과는 분명 다르다.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를 지낸 홍상수 감독은 영화감독이 지녀야할 기본기가 ‘잡학사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영상매체의 근간은 활자 매체로 이루어지기에 시나리오 분석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줄거리를 영화적 구성으로 재배치하는 습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편의 영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상상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청은 어떤가. 서울대 박영창 교수는 ‘영화가 갈 수 없었던, 그러나 문학이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고 했다. 영화가 도저히 베낄 수 없는 문자 텍스트들이 더 풍성해지기를 고민하고, 도저히 영화로는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글을 쓰려는 흔적이 역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원작이 낫다, 영화가 낫다’는 논쟁을 벌이는 것도 문청과 영청이 있어서다.
그런데, 문청과 영청이 대립하는 동안 또 하나의 세대가 등장했다. 게이머들이다. 이들은 영화 ‘대부’가 낫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낫다는 논쟁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부’라는 게임을 통해 뉴욕의 마피아가 되고, 말론 브란도가 열연했던 돈 콜레오네의 위치에 오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게임의 매력은 모두가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게임 과정이 드라마적 갈등이자 탐구여행이기에 논쟁 따위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문청 세대지만 영청을 추구한 세대로서 게임에 대한 이해는 여기까지다. 영화의 힘에는 강한 긍정을 표하면서, ‘게임은 예술이다’는 명제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게임청년’을 신문화의 주체로 여겨야하는가는 고려조차 해보질 않았다. 아마도 문청 세대의 한계이리라.
패사디나 아트센터의 엔터테인먼트 디자인학과에서 게임디자인이 인기전공으로 급부상했다지만 문화를 주도할 차세대가 ‘게청’이라고 믿고 싶진 않다. 차세대는 ‘라청’이길 소망한다. 라이브 청년 말이다. 컴퓨터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 굳이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는 온라인 세상이기에 문화만큼은 인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라청이 지배하면 좋겠다.
<하은선 특집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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