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 K씨는 세리토스 인근의 한 한인 은행을 찾았다.
어떤 일을 위해 쓸 요량으로 모은 1만달러 적금의 만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은행 문을 닫기 10분전에 도착한 그는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돈을 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창구 직원의 대답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 제한된 서비스만 가능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른 계좌를 갖고 있는 주류은행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일에 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 수 없이, 머니오더나 캐셔스 첵으로 만들어 달라고 청했으나 그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다른 은행으로의 송금 역시 ‘no’였다. 지인은 “다음날 다시 발걸음을 해서야 자신의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며 은행의 서비스 수준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은행에서 고작 1만달러를 아무 때나 인출할 수 없다니…”라고 열을 올렸다. 이 은행은 몇 년 전 경품을 걸고 특별 상품에 대한 요란한 프로모션을 하고는 올해 아무도 모르게 당첨자에게 경품을 주기도 했다.
주변의 P씨가 겪은 경우는 더 큰 낭패였다. 그는 최근 아들의 돌잔치를 앞두고 잘 나가는 한 케이터링 업체에 음식을 주문했다.
맛이 괜찮은 것 같아, 100인분 미만은 주문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정하다시피 맡긴 것이 실수였을까. 중간 점검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음식과 함께 무료 제공받기로 한 아이의 돌빔에 대해 확인하자 업주는 “친척이 부탁해 할 수 없이 대여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더란다. 이에 더해 그는 추천한 곳에서 떡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원성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혹여 그 일로 음식을 제대로 안해 주면 어떡하나 마음 졸이며 다른 곳에서 한복을 구한 그에게 실망의 ‘결정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당일 음식이 도착하지 않아 초조해 하던 차에 마침 업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주는 왜 안 오느냐는 물음에 “아니, G교회 아닌가요? 거기로 갔는데…”라는 기막힌 답을 하는 것이었다. 옷을 못 빌린 이유로 음식값을 몇십 달러 적게 내긴 했으나 돌잔치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그는 “내 돈 쓰면서 이런 대우를 받기는 처음”이라고 씁쓸해 했다.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지난 여름 한국 가던 길에 LA공항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가족들이 함께 가는 것이라, 자주 모국을 찾을 일이 없어 만들지 않았던 마일리지 카드를 즉석에서 신청하자 국적항공사 카운터의 여직원은 “탑승시간이 가까우니(우린 줄의 맨 끝이었다) 귀국할 때 한국에서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미소 지으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내 시간이 부족하지만 한번 신청을 해 보겠다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절차를 끝났으니 귀국시 임시 카드를 받으라고 한다.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 가슴이 따스해졌다.
거기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탑승구로 이동해 몇 분 남지 않은 탑승 개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숨차게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떠나기 직전 우리 가족을 찾은 그녀는 임시 카드를 건네준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보여준 그의 프로정신은 놀라웠다. ‘접대성 멘트’로만 들어보았던 고객 감동 서비스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은 물론이다.
침체의 그늘이 넓고 깊을수록 업체들은 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객 서비스 정보가 인터넷의 바다에 떠다니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업체에 대한 평판은 입광고를 통해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증가하며 전해진다.
이제 한인들은 알고 있다. 업주가 지난 번에 고객에게 한 일을.
<김장섭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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