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시름이 깊다.
집권 2기 후반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공화당의 강력한 보호막이 필요한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 11월7일로 다가온 중간선거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언론보도는 한결같이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를 점치고 있다. 상원의 다수당 지위는 가까스로 방어가 가능할지 몰라도 하원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지배적인 예상 평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선거에선 경제문제가 늘 1순위 이슈라지만 주택시장 동향이 조금 불안스러울 뿐 주요 지표들은 그리 나쁘지 않다. 게다가 숨이 턱에 걸릴 만큼 가파르게 치솟던 유가도 빠른 속도로 주저앉고 있다.
국가 안보? 영국과 스페인 등 유럽에서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연쇄 폭탄테러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반면 미국에선 9.11 이후 지난 5년간 테러리스트들의 ‘장난’이 단 한번도 없었다. 9.11 이전과 비교할 때 미국이 훨씬 더 안전해졌다고 주장할 만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부시 대통령의 업무수행 평점은 아무리 박하게 잡아도 ‘C’ 정도는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그의 지지율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치여 하야선언을 하기 직전의 수치와 비슷하다. 최근 다소 상승했다지만 여전히 40% 초반이다. 한마디로 ‘F’학점이다. 정말 왜 그럴까.
민주당 진영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판세 해독의 귀재라는 그가 보기에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하는 것조차 버겁다.
공화당은 지금 분명 흔들리고 있다. 공화당의 급소는 이라크다. 공화당은 이라크전 전사자의 숫자가 9.11 희생자 숫자를 넘어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9.11 이후 국가안보를 핵심 이슈 삼아 총선과 대선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았지만, 바그다드의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자 이라크 침공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유권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9.11의 충격은 희미해지는 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피해는 갈수록 늘어나니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시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빌미 삼아 법원을 우회한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도청을 승인하고,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감옥 운영 및 포로들에 대한 거친 심문을 묵인하는 등 입법부와 사법부를 따돌린 채 행정부의 독주를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밀 도청이나 해외 감옥 따위는 없다”며 미국민과 우방국들에게 막판까지 연막을 쳤다. 이 모든 무리수가 백악관과 공화당의 도덕성에 깊은 흠집을 냈다.
물론 관타나모도 약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관타나모에 장기 수용중인 테러용의자들을 ‘적 적투원’으로 멋대로 분류, 특별 군사재판소에 회부하려 시도했으나 연방 대법원에 의해 월권 판정을 받았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 테러용의자들을 심문하는 CIA 조사관들에게 고문에 가까운 취조방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테러용의자들을 대통령이 특별 군사법정에 회부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반테러 입법을 요구했으나 강력한 내부저항에 부딪혀 ‘타협’을 해야만 했다.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의 비리 스캔들로 잔뜩 위축된 공화당 의원들이 ‘낙선 도우미’로 전락한 부시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어 당정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클린턴이 볼 때 의회 탈환에 이번 만한 호기도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공화당의 ‘전매품’인 국가안보 이슈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있다. 상대의 허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직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아젠다 설정능력 부족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수권 정당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힘들다.
2년후의 대선까지 감안하면 올해 중간선거는 공화·민주 양당 모두에게 이겨도 이긴 게 아니고 패해도 아주 패한 게 아닌 묘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강규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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