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서 티화나로 가는 길목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 이동이 많은 국경이다. 이곳은 또 국경선 하나를 두고 가장 빈부 격차가 심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 샌디에고를 떠나 티화나에 발을 디뎌 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LA공항에서 내렸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 충격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저분하고 포장이 안 된 도로, 50년대 한국을 연상시키는 판자촌, 꾀죄죄한 사람들 모습은 깨끗한 포장 도로와 잔디밭, 산뜻한 지중해 풍의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샌디에고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엇이 국경 하나를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이 두 도시를 이처럼 다르게 만들었을까. 기후나 천연 자원에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감안하면 결론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1848년 미-멕시코 전쟁 이전까지 이 두 곳은 한 나라에 속해 있었다. 미국 영토에 편입된 후 150년의 세월이 이처럼 다른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그 세월 동안 멕시코는 일당독재와 내전, 부정부패와 폐쇄된 경제 구조, 능력에 따른 신분 상승을 막는 봉건적 사회 체제에 시달려 왔고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바탕을 둔 사회를 키워왔다. 어떤 방식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올바른 방법인가에 대한 대답은 티화나와 샌디에고가 더 이상 의문의 여지없이 내려주고 있다.
멕시코가 더 이상 옛 악습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개혁에 착수한 것은 1988년 칼로스 살리나스대통령 이후다. 수십 년째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제도 혁명당(PRI)은 정치적 경쟁과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는 쪽으로 선회했으며 이런 추세는 그 후임자인 에르네스토 세디요에 의해 계속됐다. 1994년 발효된 북미 자유화 협정(NAFTA)은 이런 큰 흐름의 일부다. 2000년에는 경제 자유화를 기치로 내건 전국 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자유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PRI의 70년 일당 독재를 깨는 업적을 이뤘다.
2006년 7월 대선은 살리나스 이후 계속돼 온 개혁 개방 정책을 주창하는 PAN의 펠리페 칼데론과 좌파 지식인, 노조, 빈민층을 등에 업고 이를 뒤엎으려는 민주 혁명당(PRD) 로페스 오브라도 후보의 결전장이었다. 양 후보의 입장이 극과 극을 달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거 결과는 총 유효 표 4,100만 표 중 24만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칼데론의 승리였다.
오브라도 측에서는 발표가 나자마자 선거 부정을 이유로 재 검표와 선거 무효를 주장해왔고 이와 함께 지난 두 달 간 멕시코 시티 거리 곳곳을 막는 시위를 벌이며 선거에 관한 최종 결정 권한이 있는 연방 선거위원회에 압력을 가해왔다.
두 달 간 이 문제를 검토해 온 연방 선거위는 5일 다소의 선거 부정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결과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며 칼데론 후보를 차기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지었다. 이로써 법적 공방은 결판이 났으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브라도가 불복을 선언하며 아예 독자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멕시코 국민의 대다수는 칼데론이 정당하게 당선됐다고 믿고 있으나 오브라도에게는 아직도 전체 유권자 30%의 골수 지지자들이 있다. 이들은 정권 쟁취를 위해 혁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폭스 치하에서 인플레는 2/3나 줄어들었고 외국 투자는 74% 증가했으며 작년 한 해 동안 57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멕시코 국민을 만족시킬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브라도 식의 국유화와 국가 통제 강화가 해답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올바른 정책과 정치적 안정, 그리고 오랜 시간 성장통을 견뎌내는 인내 등이 그것이다.
멕시코는 지금 ‘나쁜 옛날’로 돌아가느냐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세계화와 자유화의 길을 걷느냐 하는 길목에 서 있다. 과연 44살의 젊은 경제학자이자 변호사인 칼데론이 정적들을 감싸 안고 바른 정책을 펴 멕시코를 만년 후진의 그늘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kyumin@koreatimes.com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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