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은 빠르고 강렬하다. 그 조훈현의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봉수는 절벽 끝에서도 살아나는 잡초의 생명력을 체득했다.
이창호는 느린 것으로 빠른 것을 제압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조훈현을 대항해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훈현은 이 이창호를 이기기 위해 사납기 짝이 없는 전투법을 연마했다. 유창혁은 상상력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스케일이 큰 공격바둑으로 이들과 맞섰다.
이들은 서로 싸우며 서로 배웠고 장점을 흡수했다. 저마다 천재로,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때문에 생존의 방법도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승부에는 철저하고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생명력이 넘친다. 어찌 보면 거칠기 짝이 없다. 사납기조차 하다. 한국류로 불리는 한국바둑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4인방으로 불렸다.
한류란 말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가 됐다. 한국의 연예인이 해외에서 조금만 반짝하면 한류를 들먹이는 판이니.
한국류, 다시 말해 한류는 바둑의 경우 원래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인 게 아니었다. 한국류 하면 일본에서는 마구잡이식의 무식한 싸움바둑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 한국류가 마침내 세계를 휩쓴다. 4인방의 출현과 함께 일본, 중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모조리 꺾고 세계 정상에 군림한 것이다.
그 한국류의 출발은 1960년대 초로, 아주 미약하게 시작된다. 한 어린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갔다. 당시 한국의 제 1인자가 경영하던 기원이다.
1인자는 이 코흘리개 소년과의 대국을 흔연히 허락한다. 치수는 아홉 점. 무려 3시간의 대국 끝에 꼬마는 지고 말았다. 그러나 1인자는 그 소년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꼬마는 다름 아닌 조훈현이다. 당시 1인자는 조남철 국수, 이 만남이 한국 바둑을 바꿔 놓았다. 천재소년의 정식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바둑이 세계를 휩쓸게 된 초석 역할을 한 사람이 조남철 국수다. 바둑 불모지에서 한국기원을 세웠다. 이렇게 형성된 현대 한국바둑은 조남철에서 김인, 조훈현에서 이창호로 맥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조남철 국수가 별세했다. 병상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조 국수는 이렇게 말했다. “30년전만 해도 일본 기사들이 우리 한국 기사들과의 대국을 기피했어요. 이제는 일본 아이들이 우리 기사들을 못 당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다. 그 경우가 바로 61년간 기도보국(棋道報國) 외길 인생을 살다간 조남철 국수의 일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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