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9일 8가와 버몬트 인근의 교회 회관.
LA시의회 도시개발위원회가 주최한 콘도 개발 현황 파악 청문회에 참석한 라티노, 흑인, 백인 주민들 가슴에는 여전히 한겨울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지긋한 나이의 한인 서너명도 뒤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된 불쌍한 사람들로 인식되는 것이 싫어서인지 한인들은 청문회장 바깥에서 마치 구경나온 사람처럼 안을 들여다보았다.
청문회 바깥에서 구경하고 있던 중년의 한인 남성은 “지금 살고 있는 7가와 윌셔에 있는 아파트가 콘도가 전환된다는 통보를 건물주에게서 받았다”며 “다른 아파트를 찾으려고 하지만 너무 비싸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돈없는 설움을 한탄했다.
9가와 제임스우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한 라틴계 여성은 시간당 15달러를 받는 사무직에 종사하지만 딸린 식구가 많아 생활이 어렵고 자동차 보험비와 개스비를 감당 못해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그녀는 “이곳에서 마저 쫓겨나면 이제 어디로 이사가야하나”며 한숨을 쉬었다.
LA시 자료에 따르면 2001∼05년 콘도 변경 때문에 강제퇴거 당한 입주자 수는 1,032명에서 4,961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 ‘렌트 컨트롤’에 묶여 있던 아파트 9,240 유닛이 규제 대상에서 풀려났고, 시 당국은 아파트 3,100 유닛에 대해 콘도 변경 허가를 발급했다. 아파트 1유닛 거주자를 평균 2명으로만 잡아도 2만4,680명이 어쩔 수 없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이사 나가야하는 것이다.
가주법이 지난 70년대 정한 규정에 따라 건물주는 퇴거 입주자 개인당 2,700여 달러, 가족당 9,600여 달러의 이주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렌트비와 주택가격을 고려할 때 당장 한 두달은 버틸 수 있겠지만 분명히 현실과 거리가 먼 액수다.
콘도 변경에 앞장서고 있는 건물주를 탓 할 수도 없다.
해마다 인상할 수 있는 임대료가 제한된 ‘렌트 컨트롤’에 묶인 아파트 건물의 소유주 입장에서는 제값 못 받는 아파트를 고급 콘도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또 고급 콘도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높은 현 부동산 시장 실정은 건물주의 마음에 더 부채질을 한다. 건물주의 행동은 냉정한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
막상 청문회를 개최한 시의원도 속이 답답하다.
꼼꼼히 메모까지 하면서 퇴거 입주자들의 실정을 듣던 허브 웨슨(10지구)의원은 “쫓겨나게 된 입주자의 권리와 건물주의 권리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느냐”며 오히려 되물었다.
시의회는 이달 내 청문회를 2회 더 개최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모두 만족시킬 ‘솔로몬의 지혜’가 없다는 현실이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김경원
사회부 차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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