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모성의 극치다.
우연히 만난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는 <유모와 나>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인디안 부모가 성인의 모습을 한 아이에게 화려한 꽃가지가 그려진 젖을 먹이는 환상적 장면이다. 오른쪽 유방에서는 하얀 젖이 흐르다 뚝 멈추었고, 아, 나도 저 유모의 무릎에 안겨 젖을 빨고 싶다.
프리다 칼로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게다가 열 여덟 꽃다운 소녀시절에 당한 교통사고로 척추와 오른발을 서른 세 차례나 수술 받았다. 유명한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과 이혼, 재결합을 거듭하다가 마흔 일곱의 나이로 생을 접은 불행한 여자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중략)…나를 어미라 부른다/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젖이 차올라 겨드랑이까지/찡해 오면/지금쯤 내 어린 것은/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여류시인 나희덕은 <어린 것>이란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이 세상 어미의 마음을 노래했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소설 속의 두 장면을 연상해 본다.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가 극찬한 모파상 소설 속 풍경이 그 하나다.
마르세이유를 향해 달리는 작은 열차 칸, 남녀 승객은 모두 일자리를 찾아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남자는 깡마르고 단단한 체구의 햇빛에 얼굴이 검게 그을린 노동자 타입의 인부, 그 앞에 앉은 여자는 모성적 인상으로 어느 부자 집에 유모로 채용되어 가는 길이다.
한참 기차가 달리는데, 여자의 신음소리가 남자의 귀에까지 들린다. 여자는 젖이 불어 오르면서 괴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금방 병이라도 날 것 같은 기색에 남자는 “혹시 어떻게 도와 줄 수 없을까요” 하고 말을 건넨다. 그 말에 “어떻게요?” 하고 여자가 되묻는다. “아니 어떻게든 젖을 짜내야지요” 그리하여 남자는 여자의 풍만한 무릎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박고 아기처럼 젖을 빠는 희한한 광경이 달리는 열차 칸에서 벌어지게 된다. 한참 후 남자가 되려 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남자 왈 “사실 지난 하루 동안 꼬박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모파상다운 이 기막힌 스토리의 전개(반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또 하나는 샐리너스 출신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1930년 대공황과 농업의 기계화에 밀려 미 동부의 농민들은 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황금의 오렌지가 열린다는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오클라호마에 살던 조우드가의 온 가족도 몇 푼 가진 것 없이 남부여대로 비참한 노정에 나선다. 노정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가족들의 애환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읽는 이의 심금을 흔들어 준다. 이 소설의 끝 무렵에 조우드가의 남은 가족들은 하룻밤 묵기 위해 들어간 헛간에서 먹지 못해 다 죽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우유를 먹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그 말 한 마디에 조우드가의 딸 로자샤인이 스스럼없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낯선 남자에게 젖을 먹인다. 이 소설의 휴매니즘의 절정, 따뜻한 인간애가 꽃피는 것이다. 그 순간의 로자샤인은 가난한 떠돌이 농부의 딸이 아니라 거룩한 성모요, 거룩한 보살이다.
요즘 세상은 여성들이 젖을 먹이는 풍경(?)을 대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프리다 칼로의 젖먹이는 그림은 다시 한번 나로 하여금 두 소설 속의 장면과 유년의 추억을 되살려 놓는다.
아. 초로의 나도 다시 한번 그림 속의 사람처럼 두 소설 속의 사내처럼 젖을 빨 수 있다면…
■시인/<미주시인> 발행인
배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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