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하우스 헌정행사 참석자들이 사회자가 안수산 여사를 소개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 <서준영 기자>
1930년대 ‘한인촌’중심 역할
헬렌 안 여사와 다섯자녀
월 35달러에 렌트해 거주
2004년 현 위치로 옮겨와
29일 USC 한국학 연구소로 새롭게 태어난 도산 하우스는 도산 선생이 상해 임시정부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937년부터 1946년까지 도산의 부인 헬렌 안 여사가 다섯 자녀와 함께 살았던 곳. 비록 도산이 직접 거주한 적은 없지만, 한인사회에는 뜻깊은 건물로 당시 USC 인근에 형성돼 있던 한인촌에 위치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한인들이 모여드는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했다.
다우니 웨이에 있던 이 집을 월 35달러에 렌트했던 도산 가족은 영화배우인 장남 필립 안씨가 1946년 집을 구입할 때까지 10년간 살았다.
도산의 막내아들 랄프 안씨는 “당시 USC는 감리교 성향이 강해 다운타운 벙커힐 지역에 살던 한인들이 USC 근처로 많이 이주했고 자연스럽게 한인촌이 형성됐다”며 “방 2개는 세를 주고, 어머니가 맥클린톡 길에서 세탁소를 운영해 생계를 꾸릴 정도로 형편은 어려웠지만 항상 많은 한인들이 찾아와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던 도산 하우스는 USC가 확장되면서 캠퍼스 안에 포함됐고, 1965년 건물 소유권이 USC로 넘어왔다. 이후 공대 부속건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은 문과대학의 요청으로 2004년 현 장소인 34가로 이전된 뒤, 400만달러를 들여 내·외부를 수리한 뒤 지난해부터 한국학연구소로 사용중이다.
도산하우스는 대학 교회와 ‘JEP 하우스’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학 교회는 도산이 한국에서 옥사한 1938년 도산 가족과 LA의 한인이 모여 추모식을 치른 장소이기도 하다. 또 JEP 하우스는 USC 제4대 총장인 보바드가 직접 살았던 건물로 USC는 이 일대를 ‘역사 거리’로 지정했다. 도산 하우스는 USC 역사탐방 코스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도산 하우스만큼이나 도산 가족과 USC의 인연이 각별하다.
USC 대학원을 졸업한 안수산 여사는 “큰오빠 필립과 여동생 수라도 동문”이라며 “막내 랄프도 처음에 USC에 입학했으나, 풋볼 선수를 하기 위해 칼스테이트 LA로 전학했다”고 말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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