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이 일본을 두 번째로 꺾었던 15일,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토너먼트 대회에서 두 번 이겼다고 한국 야구가 일본에 앞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이 대회에 출전한 수준의 팀을 서너 팀 더 만들 수 있지만 한국은 한 개 팀 만들까 말까한 수준이다.”
기자가 이 말을 떠올린 건 WBC에서 정말 너무 잘한 한국 야구를 깎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김 감독의 말에 초단기간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던 비결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몇십 년만에 한국이 비약적 경제 발전을 이룬 건 엘리트의 덕이 크다. 한국 야구와 축구가 세계 4강에 들었던 건 폭넓은 선수층이 아니라 소수 스포츠 엘리트의 힘에서 비롯된 것과 비슷하다. 비록 그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한국 생명과학이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던 것도 과학 엘리트 황우석 덕택이었다.
김 감독의 말대로 한국은 엘리트와 그 아래 2진 사이에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 WBC 마지막 한일전에서 한국의 패배를 분석하던 한 TV 뉴스는 “일본 킬러인 왼손투수 구대성이 갑자기 담에 걸려 뛰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고 전했다. 엘리트가 빠진 구멍을 메울 백업 선수가 마땅치 않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듯 하다.
이런 결점에도 한국이 세계에서 잘 버티는 비결은 뭘까. 김 감독은 대회 결산 인터뷰에서 “해외파 선수들이 숙소에서 함께 라면 끓여먹고, 샤핑하러 가면서 이런저런 노하우를 국내파에게 전수해줬다. 이들은 다음 대회에도 부르면 꼭 오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찬호, 이승엽 등 한국 엘리트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와 동료에게 공유했고 능력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했다. 배리 본즈, 랜디 존슨 등 미국 엘리트가 대표팀을 외면한 것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그럼 우리 한인 사회는 어떤가. 소수 민족인 우리가 길러낸 엘리트가 자기가 받은 그 사랑을 얼마나 한인 사회에 돌려주고 있을까.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올 초 한 설교가 떠오른다.
“신문에서 SAT 만점 받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한인 학생 이야기는 자주 보인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 도대체 뭐하고 사는지는 들은 바가 없다. 본인 능력으로 자기 이익만 쫓는 건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김호성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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