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써 내려간 릴레이식 러브스토리다. 하나의 소설을 번갈아 가며 함께 쓰기로 작정한 두 남녀작가가 남자의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를 월간지에 연재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여자와 남자, 냉정과 열정은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왠지 냉정한 사람은 로봇 같고, 열정만 있으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아 이를 조절할 냉정을 떠올리게 한다. 또, 열정과 냉정 사이에는 자신감, 긴장, 인내, 끈기, 겸허함 같은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될 필요도 있다.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들의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에 냉정을 찾기가 힘들다. 아무리 얌전하게 보여도 딱 30분만 작품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면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내서 ‘아, 그렇구나! 이게 이런 거구나’를 연발하게 만든다.
반면 늘 열정이 넘쳐나는데도 성과가 시원찮은 예술가도 적지 않다. 열정은 과잉인 반면 냉정함이 부족한 것 같다. 또, 열정은 전해지지 않는데도 성과만 떠들고 다니는 예술가도 있다. 냉정으로 열정을 억눌러 예술이 힘을 잃어버린 것 같다.
요즘 한인타운에는 문화행사들이 한창이다. 연극공연도 하고, 전시회도 많고, 클래식 음악회, 팝 콘서트가 줄을 잇고 있다. 야구열풍에 문화나들이 가자는 말이 섣불리 나오진 않아도 열정은 비슷한 열정을 지닌 부류와 통하는 법.
한가지 타운 문화행사에 가면 동병상련의 의미가 가슴깊이 들어온다. 그림전시회에 가면 화가들이 많고, 음악회를 찾으면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알거나 자녀가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음악애호가들이 많다. 또, 연극 공연에는 왕년에 무대에 서본 배우 아니면, 학창시절 연극 동아리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민사회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무대와 객석 사이, 전시와 관람객 사이가 유난히 가깝다는 것. 여길 가도 아는 사람, 저길 봐도 낯익은 사람이어서 모두가 예술가인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와중에 이민문화니까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해도 이해해 달라는 변명을 듣게 되면, 열정과 냉정 사이에 엉거주춤 서있는 나 같은 사람은 서글퍼진다. 전업이든 부업이든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그게 아닐텐데, 스스로 잣대를 낮추는 건 예술가의 혼이 아닌데…
그렇다고 기대를 저버리기엔 너무 이르다. 아직은 실망보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엔 열정이 넘치고 냉정까지 갖춘 예술가들이 많다. 하지만, 예술가의 열정은 한 사람의 자기충족만을 위한 행위로는 큰 의미가 없다. 관객과 만나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존재가치이다.
하은선
특집1부 차장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