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 03 - 09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모두가 평등하게 지켜야 할 규범이지만, 덕은 최대한의 가치 규범이라서 아무나 다 갖출 수는 없다.
덕의 관점에서는 세상사가 공평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덕 있는 아내는 아무나 될 수는 없고, 충성과 효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덕목이 되지 못한다. 날 때부터 건강하게 태어나는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근육과 운동신경이 남보다 탁월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듯이, 덕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노예의 신분이건, 거지이건, 첩이건, 기생이건 간에 신분고하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덕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의 삶에서 덕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좋은 가정교육을 받고 좋은 스승을 만나서 갈고 닦아 덕을 세울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가며 살고 나서야 덕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다. 불공평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을 주거나, 좋은 스승을 만나도 덕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 있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통을 겪어도 덕이 쌓이지 않아, 부덕이 몸에 밴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부덕한 사람이 있다. 왕이 되어도, 대통령이 되고, 갑부가 되어도 교수가 되어도 덕을 못 갖추는 사람이 있다. 선천·후천적인 요소가 다 가미되어 부덕한 사람은 부덕한 언행을 하면서 살아간다. 부덕은 불법은 아닌지라 현대 사회에선 오히려 떳떳이 성공과 출세의 가도를 달리면서 뻗어나가기도 한다.
덕이 법과 다른 점은 대단하다. 법은 하나의 법과 다른 하나의 법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럴 경우는 항상 상위의 법을 따른다. 즉 지방법과 주법이 다른 경우에는 주법을 따르고 주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헌법을 따르게 마련이다. 덕은 하나의 덕이 다른 덕을 배제하지 않는다. 모든 덕스러운 행위가 바로 다 함께 모여서 더 큰 덕을 이루게 마련이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규범이지만 덕은 각자 분수 안에서 찾는 최대한의 언행이다. 자연 친화적이고 사회 친화적이며 문화와 인간 친화적이다.
법은 문자로 기록되어 가감하거나 혹은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과거의 합법이 새 법에 의해서 불법이 되고, 현재의 불법이 미래에는 합법이 될 수도 있다. 불법 체류자가 시민권자와 결혼을 한 후에 합법체류자가 되어, 떳떳하게 직장도 갖고, 활개치며 자유를 구가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불법이 네바다주에서는 합법일 수 있어서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다.
덕이란 기준이 없지만 어느 것이 부덕한 소치인지는 재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천년 전의 부덕한 소치는 천년 후에도 여전히 부덕할 수밖에 없는 영속적인 가치가 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인륜과 천륜의 길이 바로 덕과 통하게 된다.
불법 체류자를 돕고 고발하지 않는 사람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에 계류중이라고 하자, 마호니 추기경이 정면으로 도전했다. 가톨릭 교회와 사제들은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체류신분 여하에 불문하고 돕겠다고 했다.
법과 덕의 충돌이 예고된다. 감히 최소한의 기준으로 최대한의 기준인 덕의 소치를 판단하려 하다니! 물 흐르듯이 자연하게 흐르는 하늘이 준 질서인 덕의 소치를 법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정도는 알고 법을 제정해야 한다. 덕이란 단어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문화에서 덕을 법으로 판단하려 하니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외쳐야 한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정균희 /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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