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도 귀밑머리가 더러는 보숭보숭한 아내의 손에
아이처럼 이끌려 틀니를 맞추러 갔다
한 세상 풍파가 크고 작은 상처와
궤적을 그어놓은 나를 일별한 아내또래
서양여자 의사가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아버지냐고
그 말에 금새 눈시울에 진줏빛 엷은 안개가 어리더니
생의 서러움 같은 것이 어리더니
내 아내는 아니요 남편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평생 처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서 아내를 안았다
쓸쓸히 빈방을 지키는 이에게
아이들은 참새처럼 재재대며 학교로 가고
아내는 어디론가 품팔러 가고
목조 아파트 빈방을 지키는 初老
캘리포니아 햇살은 베란다에 알몸으로
뛰어내려 열쇠도 없이
방안에 점잖게 좌정해 있다
내 기억 속 랍비의 아들
아이삭 바세비스 싱거가 생시에 고이
키웠다던 잉꼬새 두어 마리
어디서 왔을까
내 初老의 적막 흔들며 운다
도수 높은 안경으로 그 새들의 울음인지 눈물인지
엿보려 했지만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그런 것은 신이나 보는 것인가
사람의 하찮은 마음이나 육신의 眼力에는
그 눈물이 닿아도 보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기실은 나도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투명한 눈물의 방울들을
은밀히 간직한 채 살고 있음을
태평양 너머 누구던가
나처럼 쓸쓸히 빈방을 지키는 이에게
어떤 상징이나 은유도 없는
그런 편지를 쓰고 있다.
배정웅
현대문학 추천
시집 <사이공 서북방 15마일> <길어올린 바람>
<바람아 바람아> <새들은 빼루에서 울지 않았다> 등
성남시 문화상·해외문학상·해외한국문학상등 수상
현재 <미주시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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